각국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위탁보관한 미 국채 보유량이 지난주 순식간에 1,050억달러나 증발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연준은 지난 14일(현지시간) 다른 나라가 맡긴 위탁자산(custody holdings) 가운데 미 국채 보유량은 12일 현재 2조8,550억달러로 일주일 만에 1,050억달러가 유출됐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미 국채 위탁자산이 단기간에 대규모로 빠져나가기는 극히 이례적이다. 지난해 6월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 때 신흥국이 통화가치 방어를 위해 미 국채를 회수했을 때도 320억달러 규모에 그쳤다.
연준은 국제금융시장의 영향을 우려해 국가별 위탁자산 규모는 통상 3개월 뒤에나 공개하기 때문에 이번 미스터리의 배후는 아직 안갯속에 가려 있다. 하지만 시장은 러시아를 지목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러시아의 연준 위탁 국채는 1,386억달러로 이번에 유출된 금액과 비슷하다.
16일 크림자치공화국의 러시아 귀속이 결정될 경우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대외자산 동결 등의 제재조치를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 러시아가 선수를 쳤다는 것이다. 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최근 금융불안이 심화하면서 달러 확보가 절실한 실정이다. 달러화 대비 루블화 가치는 올 들어서만 10.3%나 폭락했고 러시아 중앙은행도 통화가치 방어를 위해 이달에만 160억달러를 쏟아 부었다.
브라운브러더스해리먼의 마크 챈들러 통화전략 수석은 "시점상 러시아가 유력하다"며 "연준에서 자산을 빼내 시장에 판 게 아니라 미국의 사법권이 덜 미치는 다른 나라 은행에 맡겼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대립 중인 미 금융시장 공격용이 아니라 단순히 위탁처를 바꾸는 방어용이라는 것이다.
실제 중국 경기둔화 우려 등으로 안전자산 수요가 몰리면서 지난주 미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0.15%포인트 하락(가격상승)하며 9개월여 만에 최대폭으로 떨어졌다. 소시에테제네랄의 안토니 크로인 국채 트레이더는 "누군가 국채를 대규모로 팔았다면 시장도 알고 거꾸로 움직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세계 2위, 3위 미 국채 보유국인 중국·일본을 거론하고 있다. 중국이 지난주 사상 첫 회사채 디폴트(채무불이행), 경기둔화 우려 등으로 자국 금융시장이 불안해지자 신용보강 차원에서 일부 미 국채를 회수했다는 것이다. 또 일본 정부가 올 3월 말 회계결산을 위해 해외 보유한 미 국채를 잠시 활용했다는 해석도 있다. 아울러 일부 신흥국들이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달러확보에 나섰다는 분석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