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사설] 러시아 개각평가

옐친 대통령은 푸틴 총리지명자가 러시아의 개혁정책을 추진할 능력이 있는 인물로 평가했다. 그러나 푸틴은 스테파신 등 전임 총리들과 마찬가지로 정보요원 출신이다. 대통령의 지시 아래 활동해온 이같은 전력 탓에 푸틴이 러시아 정치개혁을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현재까지 푸틴에 대한 서방 진영의 반응은 그리 부정적이지는 않다. 미국은 특히 푸틴에게 지지를 보내며 러시아와 협력관계를 공고히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서방은 과거 전임 총리들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한 평가를 내려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푸틴은 러시아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하루빨리 크렘린 체제에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옐친은 자신의 정치인생을 화려하게 마무리짓기 위한 작업에 혼신을 다하고 있다. 재계 출신 거물 정치인 보리스 베레조프스키를 포용하는 한편 내년 대선에서 강력한 도전자로 등장한 유리 루쉬코프 모스크바 시장을 견제하고 있다. 옐친이 최근 루쉬코프를 지지하는 언론 재벌 모스트 그룹에 대해 세무조사를 실시한 것도 바로 이같은 맥락에서다. 러시아가 72년 역사의 공산체제를 청산, 시장경제로 전환되는 과정이 상상외의 혼란상을 보이고 있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사실 서방 진영과 투자자들은 훨씬 전에 이 사실을 깨달았어야 했는데 너무 안이하게 대응, 돈만 쏟아붓는 꼴이었다. 대신 크렘린의 권모술수로 혼란의 이면에 서방이 일부나마 책임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러시아가 정치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대통령 선거의 도입, 헌법에 근거한 정치권력 행사 등은 과거엔 기대하기 힘든 것들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변화는 국민들의 의식구조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들은 이제 자신의 욕구를 표출, 더 많은 자유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국민의 변화에 정치가 따라가지 못하는 게 러시아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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