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유통시대- <3>점포 밖에서 살길 찾는 대형마트
온라인마트 사업에 힘싣고 자체브랜드·병행수입상품 확대
지난 2000년 설립된 영국의 유통기업 오카도(Ocado)는 점포 운영 없이 인터넷을 통해서만 식료품을 판매한다. 2000년대 초반 닷컴 열풍 속에 등장했던 수많은 인터넷 유통업체들이 실적 부진으로 문을 닫았지만 오카도는 여전히 하루 1만8,000여 건의 주문을 처리하고 있다. 2011년에는 영업 시작 10년 만에 매출 1조원 달성과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지난해 10월엔 증시에서 영국의 1위 유통기업인 테스코의 주가까지 넘어섰다. 후발주자인 오카도가 무섭게 추격하자 위기 의식을 느낀 테스코는 결국 최근 경영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올해 신규 출점을 지난해 절반 수준으로 줄이는 대신 급성장하는 인터넷 등에 투자하겠다는 게 필립 클라크 테스코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달 밝힌 새로운 영업 방향이다. 김민지 이트레이드증권 유통 담당 연구원은 “블룸버그에 따르면 오카도는 올해와 내년에도 13~17%의 매출 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우리나라 역시 높은 스마트폰 보급률 등을 고려할 때 온라인마트(e-grocery)의 성장 조건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의 말대로 영국 오카도의 성공 스토리는 국내 대형마트업계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지난 1993년 문을 연 이마트 1호점 창동점은 ‘디스카운트스토어’라는 단어에 매료된 소비자들이 몰려들면서 개점하자마자 하루 평균 9,000만~1억3,000만원의 매출을 냈고 1년 후엔 주말 기준 최고 4억원어치를 팔기도 했다. 말 그대로 대형마트는 국내 유통업계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떠올랐다.
하지만 20년만인 현재 국내 대형마트업계가 처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압축성장 과정에서 이마트 146개, 홈플러스 138개, 롯데마트 105개 등 주요 3사가 400여개 점포를 낼 정도로 백화점을 제치고 국내 유통업의 대표선수가 된 기쁨도 잠시 현 상황은 ‘내우외환’ 그 자체다. 내수 경제가 전반적으로 저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신규출점 규제와 영업시간 제한, 중소ㆍ영세기업과 상생을 위한 취급 품목 축소 등 정부와 사회에서는 지속적으로 대형마트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또한 유통업계 내부적으로는 경쟁자가 너무 많아졌다. TV홈쇼핑ㆍ인터넷몰ㆍ오픈마켓ㆍ소셜커머스 등 온라인을 기반으로 하는 유통업체들의 잇단 등장으로 소비자들이 오프라인 점포를 덜 찾고 있고, 후발주자들의 가격파괴 정책으로 인해 한때 독보적이던 가격 경쟁력마저 잃어버렸다. 지난 해 대형마트업계의 성장률은 1.6%로, 물가상승률 2.2%를 감안하면 사실상 마이너스 성장을 한 셈이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의무 휴업 등으로 악화된 영업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대형마트는 신성장 동력 발굴 등 돌파구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대형 매장 안에 ‘할인’ 표시를 단 상품을 가득 쌓아놓고 손님이 찾아오길 기다리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 된 것이다.
이 같은 위기 의식 속에 대형마트들은 현재 생존 비책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오카도의 성공방식인 온라인마트 확대와 일본 대형마트업계에서 성공한 자체상표(Private Label 또는 Private Brand) 상품 확대 등을 국내 환경에 맞춰 변형해 도입하고 있다.
우선 지난 2002년 홈플러스를 필두로 이마트, 롯데마트가 차례로 문을 연 대형마트 3사의 온라인마트 사업은 그동안 차별성 없는 서비스, 환경 변화에 둔감한 대응 등으로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오픈마켓과 홈쇼핑의 거센 추격과 모바일커머스의 발전에 위기의식을 느낀 3사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온라인마트를 신사업 영역으로 삼고 인터넷은 물론 모바일, 배송 및 물류시스템까지 관리하하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으로서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마트의 경우 지난 2012년까지 확대일로였던 온라인사업부의 적자 폭이 지난해 축소 전환했다. 오는 2016년 경에는 이마트몰이 이마트에서 이익 창출 사업부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달미 아이엠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이마트의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가 오픈하면서 물량 공급이 원활해져 이마트몰의 매출 성장세가 두자릿수를 기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업계에서는 우리나라의 인터넷 및 모바일 쇼핑 이용률이 높은데다 배송 효율이 높은 주거 밀집형 상권이 많아 대형마트가 지금이라도 온라인마트 사업에 적극 나설 경우 충분히 승산있는 경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디스카운트스토어’로서의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한 대형마트업계의 노력도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과거 대형마트 3사는 단순히 박리다매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으나 이제는 적극적인 자체상표 상품 개발과 유통단계 축소, 해외 직소싱 등 다각도에서 가격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다. 이마트가 신세계인터내셔널과 협력해 생산ㆍ판매하고 있는 자체 의류 브랜드 ‘데이즈’는 지난 2009년 2,000억원이던 매출이 올해 4,000억원대로 껑충 뛸 것으로 전망되는 효자 상품이 됐다. 롯데마트에서도 지난해 기준으로 자체 브랜드 상품 매출 비중이 전체의 25%까지 확대됐다.
대형마트들은 유통 단계 축소나 유통 방식 전환을 통해서도 가격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국내에서 농수축산물 산지와 계약 재배를 통해 신선식품 판매 물량을 안정적인 가격에 확보하는 것은 기본이고 지난 해부터는 해외 직거래와 병행수입 등을 통해 수입상품의 가격을 내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대형마트 히트상품으로 불렸던 랍스터, 와인, 망고, 캐나다구스 등이 이 같은 방식으로 가격 우위를 확보했다. 지난 해 실험적인 수입이 소비자 관심을 끄는데 성공하자 올해 대형마트들은 더 많은 상품을 해외에서 들여올 계획이다. 이마트는 미국ㆍ일본ㆍ중국ㆍ베트남 등 해외 사무소를 통해 신규 상품 발굴 및 거래처 확보에 적극 나서 지난 해 600억원 수준이던 병행수입 규모를 올해 800억원대까지 늘릴 방침이다. 롯데마트 역시 올해 병행수입 상품의 스펙트럼을 넓혀 지난해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난 350억원까지 매출을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박세라 신영증권 연구원은 “병행수입의 주요 아이템인 패션 잡화는 상대적으로 고마진 상품”이라며 “그동안 정부의 규제 대상이던 대형마트가 병행수입 활성화라는 정부 정책의 수혜 대상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볼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