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두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이 차기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한 것에 이어 김석중 전경련 상무의 발언 파문으로 최근 훈풍이 부는 듯했던 차기 정부와 재계의 관계가 당분간 얼어붙을 것으로 보인다.
◇인수위-재계 냉각 불가피=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김 상무의 발언이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정책기조와 인수위의 정책방향을 심히 왜곡하는 것”이라는 강한 유감표명과 함께 `합당한 조치`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는 새 정부의 경제정책에 사사건건 반발하는 재계의 태도에 쐐기를 박아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재계는 노 당선자가 경제5단체장과 간담회에서 `5+3` 원칙을 제시하고 인수위 역시 대기업 개혁을 자율ㆍ장기ㆍ점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후 순항하는 듯하던 인수위와의 관계가 암초에 부딪히면서 일선기업으로 불똥이 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는 차기 정부가 상속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 집단소송제, 금융기관계열분리청구제도 등 획기적인 개혁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아직 추진시기나 시행강도가 결정되지 않은 마당에 인수위의 신경을 필요 이상으로 건드려봐야 좋을 게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차기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놓고 재계가 잔뜩 긴장하고 있는 마당에 지나친 표현을 사용, 정부와 재계간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며 김 상무의 발언을 간접 비난했다.
◇전경련, 파문 최소화 총력=전경련은 일단 `공식 입장과는 전혀 무관하며 물의를 일으키게 돼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또 13일 조카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인도네시아를 방문했던 김 상무도 12일 급거 귀국, 기자간담회를 통해 발언경위를 설명했다.
김 상무는 “돈 커크 헤럴드트리뷴 기자와 인터뷰한 것은 인수위가 구성되기도 전으로 인수위를 공격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었다”며 “`사회주의적 (socialist)`이라는 용어도 신정부의 경제경책에 대해 묻길래 일자리 200만개 창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사회안전망(social safety network)`을 강조하고 있다고 발언한 게 와전된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전경련은 인수위가 요구한 `합당한 조치`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성의 표시를 할 방침이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필요하다면 김각중 회장의 공식 사과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갈등요인`은 여전히 잠복=이번 김 상무 발언 파문의 배경에는 노 당선자 진영의 대기업 개혁정책에 대한 재계의 불만과 불신감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 만큼 갈등이 완전히 진화되기는 힘들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전경련이 자타가 공인하는 재계의 대변자인데다 김 상무는 대외적으로 전경련을 대표하는 논객(論客)으로 그동안 재계의 분위기를 직설적으로 전달해왔기 때문이다. 재계의 한 인사는 “김 상무의 발언은 차기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우려를 다소 과장되게 표현한 것이기는 하지만 정부 역시 급진적인 개혁정책에 대한 재계의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형욱기자 choihu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