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과소비] 2. 범람하는 이동통신

올해초 휴대폰 시장 전문가들은 이 의견에 대체적으로 동의했다. 지난해에만 총 980여만대의 휴대폰이 판매돼 전체 이동전화 가입자가 1,400만명에 달하는 등 누가 봐도 시장은 포화 상태였다.그러나 이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올들어 3월까지 매달 평균 120만대가 날개 돋친듯 팔렸기 때문이다. 120만대면 90년대초만해도 1년간 판매량이다. 전문가들은 다시 예상했다. 『4월부터는 달라질 것이다. 휴대폰 보조금이 대폭 줄어 미리 가입하려는 잠재수요가 일시에 몰리는 바람에 예상을 빗나갔었다. 시장이 이미 포화상태여서 더 이상 팔래야 팔 곳도 없다.』 시장은 그러나 이들의 예상을 또다시 묵살했다. 올들어 9월말까지 판매된 휴대폰만 총 1,100만대. 전체 가입자도 2,100만명을 넘어섰다. 따라서 4인 가족을 기준으로 볼때 한 가정당 2대의 휴대폰을 가진 셈이다. 또 인구대비 보급률로 따지면 세계 8위 수준이고 시장 규모는 세계 5위이다. 국민 한 사람당 236만원의 빚을 걸머진 나라치곤 너무 과분할 수 밖에 없는 수치다. 전문가들은 또다시 외친다. 『정말 마지막이다. 시장은 포화됐다.』 그러나 시장 전문가들의 마지막 예상이 적중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동전화 시장은 아직도 영화 「스피드」에서처럼 브레이크가 파열된 채 고속으로 내달리는 열차같기만 하다. 시장이 이처럼 비상식적으로 폭발한 것은 96년 3개 PCS 사업자가 허가된 뒤 좁은 시장에 5개업체가 난립하면서 과당 경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그 부작용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우선 사업자들의 경영난을 들 수 있다. 밑빠진 독에 물붓듯 보조금을 지급하다보니 경영이 정상적일 리 없다. 96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5개 이동전화 사업자가 지급한 단말기 보조금은 총 4조9,331만원. 부채도 6조9,793억원으로 늘었다. 특히 98년의 경우 한 업체는 매출액보다 많은 돈을 단말기 보조금으로 지불했다. 경쟁이 심하다 보니 기지국 공용화에도 실패했다. 그로 인한 낭비도 엄청나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정호선(鄭鎬宣·국민회의) 의원에 따르면 5개 이동전화 사업자의 기지국수는 총 1만1,745개. 4조3,000억원의 돈을 쏟아 부었는데 공용화했을 경우 1조2,000억원을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속 빈」경영을 하다보니 회사살림이 넉넉할 리 없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동통신 업체들의 잇딴 외자유치는 알려진 것과 달리 경영실패를 보전하기 위한 「구걸」에 가까운 것』이라고 토로했다. 또 이동통신 업체들은 「통신 과소비 풍조」를 조장했다는 비난을 면할 길이 없게 됐다. 30~40만원에 달하는 단말기를 거의 공짜로 주다보니 소비자들 사이에 「단말기는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는 인식이 만연됐다. 이와 관련, 택시 운전사 10년 경력의 최성훈씨(45)는 『손님들이 한달에 10여개의 휴대폰을 놓고 가지만 어찌된 일인지 찾아가는 사람은 드물다』며 『휴대폰 과소비 풍조가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 같다』고 말했다. 휴대폰이 공짜나 다름없자 새로운 풍조도 생겼다. 유행에 민감한 신세대들은 기존 이동전화를 해지한 뒤 새 업체에 가입, 새 단말기를 쓰고 있다. 30~40만원대의 최신 단말기를 5만원 안팎에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말짱한 단말기가 장롱 속에서 사장되는 물량도 엄청나다.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1,400만대 가량의 멀쩡한 휴대폰이 사장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극심한 경쟁에 시달리고 있지만 이동전화 업체들이 저인망식 공격적 마케팅을 통해 대금지불 여력이 없는 학생이나 어린아이까지 마구잡이로 가입시켜 휴대폰 사용료 미수금도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정보통신부에 따르면 98년이동전화 사용료 미납 요금이 1,013억원에 이르렀다. 이처럼 이동전화 시장의 외형만 크게 부풀려지면서 그 부담이 고스란히 이동전화 업체 스스로와 소비자들에게 부메랑되고 있다. 96년 3개 PCS 사업자가 출범할 당시만해도 200만명의 가입자만 확보하면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됐었다. 그러나 현재 이 수치는 업체에 따라 300만~500만명으로 상향 조정됐다. 당연히 요금인하 속도도 늦춰질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사용료에 부담을 느낀 휴대폰 이용자들은 최근 소비자단체와 PC통신 동호회를 중심으로 집단적인 요금 인하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결국 이동전화 업체들의 손익분기점은 더 높아질 수 밖에 없다. 브레이크가 파열된 채 끝 모르고 질주하는 국내 이동전화 시장 곳곳에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이상징후가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이균성기자GSLEE@SED.CO.KR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