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 후진타오 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고 왔다. 이 때 중국 정부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고위직 대부분이 이공계 출신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후진타오 주석도 이공계 출신이라 했고 중국의 과학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한 것도 이공계 출신들이 좋은 대우를 받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에는 이공계 출신이 너무 없다 보니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도 이공계를 기피한다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언론뿐만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과 김진표 경제부총리도 이런 점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면서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 이공계 출신을 20∼30%까지 정부 고위직에 등용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다짐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 정부에서도 늘 하던 말이었다. 그러면서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똑같은 내용의 말이 되풀이 될 뿐이었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은 우리나라만이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선진국이나 후진국을 막론하고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과학기술정책을 국가적 과제로 여기고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다양한 중장기적 대책을 세우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과학자나 기술자들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우수한 인재들이 얼마나 많이 이공계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어려서부터 과학에 대한 흥미를 가진다면 성장하면서 과학기술 분야에 뜻을 두는 학생들이 많아질 것이다. 그러다 보면 대학 진학에서도 이공계 지원자가 늘어날 것이고 이공계 지원이 많아지면 과학기술 인력도 늘어나게 마련이다.
이런 논법이 맞다면 어려서부터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높이는 일이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린이용 과학도서는 잘해야 본전이라는 것이 한때 출판계의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그런 속에서 1989년 예림당이 발행한 `왜 시리즈`로 불리는 과학만화는 그러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이후 예림당이 한층 다양한 과학도서를 발간하는 데 있어 기폭제가 된 책이기도 했다.
과학만화는 1987년 말부터 구상하면서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어린이들이 궁금해 하는 기초 자연과학 분야를 사진을 포함한 만화로 엮어낼 계획이었다. 과학책은 왜 팔리지 않을까, 어린이들이 과학을 싫어해서 일까, 그게 아니라면 무슨 이유일까 등등의 고심 끝에 착안한 것이 만화형식을 빌어 과학책을 만드는 것이었다.
88년 초, 만화작가 장석준씨를 콘티작가 겸 팀장으로 하여 인원을 구성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권수는 총 10권으로 하고 1, 2차에 나누어 출간하기로 했다. 그리고 2년의 노력 끝에 1989년 12월 6권이 먼저 발행됐다. `우주는 왜`, `지구는 왜`, `식물은 왜`, `동물은 왜`, `새럭点堧?왜` `생명과학은 왜`가 그것이다.
어린이들이 궁금하게 여기는 과학적 내용을 만화 형식을 빌어 재미있게 풀어갈 뿐만 아니라 이해를 돕는 깔끔한 사진과 세밀화 자료들이 가득 실린 책은 서점에 진열하자마자 그야말로 찬사가 쏟아졌다.
이러한 찬사는 곧바로 독자들의 맹렬한 수요로 이어졌다. 이듬해 8월 `컴퓨터는 왜`, `우리 몸은 왜`, `날씨는 왜`, `바다는 왜`의 나머지 4권이 완간해 10년 가까이 예림당의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또 2002년 한 차원 업그레이드하여 요즘의 입맛에 맞게 새로 만들어 내기 시작한 `Science Comic WHY?` 시리즈가 그 바통을 이어 서점가에서 어린이 과학책에 관한한 예림당이라는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1992년 예림당이 북경 국제도서전에 참가했을 때 중국 출판인들이 경쟁을 하다시피 저작권 문의를 해온 책도 과학 만화였다. 그리고 그 해 12월 흑룡강성 조선민족출판사와 저작권 수출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예림당 책이 중국에 진출하는 최초의 사례가 됐다. 또 현지 중국어로 출판된 이 책이 인기리에 팔리게 되면서 이후 많은 예림당 도서가 중국으로 진출하는 데 시금석이 되기도 했다.
<김문섭기자 clooney@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