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43주년] (존경받는 기업, 기업인을 만들자) 2-3. 투명경영의 교과서

세계적 제약업체이자 윤리 경영의 효시로 불리는 미국의 존슨 앤 존슨. 이 회사는 지난 82년 회사의 존망이 걸릴 정도로 중대한 위기에 처했다. 한 범죄자가 두통약인 타이레놀 병에 독극물을 투입, 8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 사고를 미연에 막지 못한데 대한 여론의 집중 포화가 쏟아졌고, 깨끗한 이미지로 세계인의 존경을 받아온 이 회사의 위상은 급속하게 추락했다. 하지만 기업윤리를 생명으로 하는 존슨 앤 존슨의 대응은 역시 달랐다. 회사측은 2억4,000만 달러 규모의 손실을 감수하며 미국 전역에 있는 3,100만병을 모조리 수거했다. 사고 지역인 시카고 내 병만 수거하면 됐지만, 소비자 보호를 위해 수거 대상을 미 전역으로 확대한 것이다. 회사측은 특히 타이레놀이라는 이름을 쓰지 말라는 시장 조사업체의 컨설팅 결과를 무시하고, 같은 이름으로 당당하게 새 제품을 출시해 성공을 거뒀다. 경영ㆍ기술상의 실수는 있을지 몰라도, 도덕적 과오만은 저지르지 않겠다는 윤리 의식을 드러낸 셈이다. ◇믿을 수 있는 기업이 존경 대상= 미국 포천지가 선정하는 `가장 존경 받는 기업`은 `재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릴 정도로 권위를 인정 받고 있다. IBM은 이곳의 기업 평가에서 무려 4회에 걸쳐 1위에 올랐다. 그 비밀은 IBM이 추진해온 글로벌 윤리ㆍ투명경영에서 찾을 수 있다. IBM의 연례보고서는 전화번호부만큼 빼곡 하기로 유명하다. 투명경영을 위해 자세한 내부 기록을 보존하는 것을 업무 지침으로 하고 있으며, 정보의 누락과 파기는 해고 대상이다. 회계 조작을 막기 위함이다. 엔론 사태 이후에는 회계 감사와 컨설팅기관의 중복을 철저히 금지시켰다. IBM의 이 같은 치밀한 회계처리는 기업을 떠받치는 가장 기본은 바로 `유리알 회계`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폴크스바겐에 이은 독일의 2대 기업이자 세계 22위의 지멘스. 하인리히 폰 피어러 회장은 엔론 사태 이후 지멘스의 모토를 `우리는 말한 것을 지킨다(We do what we say)`에서 `우리는 하는 일을 말한다(What say what we do)`로 바꿨다. 기업의 투명성이 전제되지 않은 실적은 사상누각과 마찬가지라는 진실을 터득한 것이다. 그리고 기업의 모든 결정은 서로 다른 부서가 견제할 수 있도록 제도화 시켰다. `윤리ㆍ투명경영`은 이처럼 세계의 다국적 기업들에게 피할 수 없는 명제로 자리하고 있다. ◇부패는 기업경영의 독약= 세계 최고의 찬사를 받는 IBM도 한때는 `실패한 윤리경영`으로 곤욕을 치른 경험을 갖고 있다. IBM의 아르헨티나 지사는 세계에서 가장 수익이 많이 나는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지난 99년 매출이 7억 달러에서 4억5,000만달러로 뚝 떨어졌다. 아르헨티나의 사업 특성상 뇌물을 주지 않으면 안되는 현실에 순응했고, 이 사실이 발표되면서 회사의 윤리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던 것이다. 이처럼 존경 받는 기업에게 `부패의 경제학`은 치유하기 힘든 독약이다.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던 일본의 식품회사 유키지루시가 사용금지된 원료를 사용하다가 결국 도산한 것, 미쓰비시자동차가 미국 본사의 성희롱사건과 불량부품 은폐사건 등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3년 사이 CEO(최고경영자)가 3명이나 교체된 것, 이런 사례들은 기업 이미지 추락이 경영에 얼마나 큰 피해를 안겨주는지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들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아무리 튼튼한 회사라도 비윤리적 경영의 사실이 한번 알려지면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을 수 있다”고 충고했다. ◇투명ㆍ윤리경영의 출발은 CEO= 최인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윤리 경영의 출발과 정착은 CEO로부터 출발한다”고 지적했다. 윤리 경영의 시행초기에는 사내 거부감 등 시행 착오가 나타날 수 밖에 없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최고 경영자의 의지가 선결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미국 벨 애틀랜틱 등이 CEO와 최고 윤리담당위원(Chief Ethics Officer)을 겸직하도록 한 점이 눈길을 끈다. 최고경영자가 회사의 투명ㆍ윤리경영을 진두지휘토록 한 것이다. 이사회 내에 윤리위원회를 설치하는 것도 한 대안으로 꼽힌다. 미국윤리담당임원협의회(EOA)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기업의 25% 이상이 이사회 산하에 윤리위원회를 설치ㆍ운영중이다. 이는 바로 투명ㆍ윤리 경영을 통해 존경 받는 기업으로 자리한 기업들의 공통적 특징이자 우리의 기업들이 지향한 목표인 셈이다. 최인철 연구위원은 “사회 각 분야의 투명성을 높이면서 윤리ㆍ투명 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게임의 규칙을 정비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직장상사ㆍ동료들간 신뢰지수 낮아 ■기업 공동체의식 설문 서울경제가 1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신뢰 경영 지수의 모형 중 하나가 공동체 문화다. 이중 핵심은 공동체 의식으로, 상사와 직장 동료 등 조직 내부 구성원간의 상호 신뢰가 설문의 세부 도구였다. 조사 결과 드러난 공동체 의식의 지수는 68.44. 전체 평균(70.54)에 미달하는 미흡한 수준이었다. 우선 상사(부서장)에 대한 의식에서 직원들은 자신의 상사가 부하직원의 욕구를 잘 파악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66%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상사 중 자신이 추구하는 성공의 모델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69.60의 낮은 점수가 나왔다. 동료간 신뢰지수도 그리 높지 않았다. 직원 서로간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지에 대한 질문에 67.60%만에 `예`에 마크 했으며, 직원 서로간에 협조적인지에 대해서도 70.60으로 가까스로 전체 평균에 턱걸이했다. 응답자들은 다만 자신의 업무지식과 능력에 자부심을 갖고 있느냐는 질문에 72.40의 비교적 높은 점수를 줘, 조직보다는 개인의 역량에 후한 점수를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윤리강령ㆍ감독조직ㆍ교육을 통한 공감 투명경영 3大 공통점 윤리ㆍ투명경영의 교과서로 알려진 세계적 기업들의 경영 방식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윤리강령(Code of conduct) ▲준수감독조직(Compliance check organization) ▲교육을 통한 공감(Consensus by ethic education) 을 중심으로 한 `3C`체제다. 부정적 이미지로 치부되기 쉬운 군수산업. 그 대명사인 노드롭그루만은 지난 80년대 초반까지 각종 군수산업 스캔들에 연루돼 이미지가 크게 추락했다. 하지만 86년 미국내 군수산업들이 구성한 `군수산업 윤리경영 실천협회(DII)`에 참여한 것으로 계기로 윤리ㆍ투명경영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노드롭은 또 기업윤리 사무국을 별도로 설치하고, 내부고발제도인 `오픈 라인(제보전화)`을 운영했다. 직원들에 대한 윤리ㆍ투명성을 함양하기 위해 세익스피어의 `헨리 5세`를 교재로 채택해 교육시켰다. 세계적 중공업 업체인 ABB도 `3C 경영`을 표방하고 있다. ABB는 분권화를 지향하며 각 계열사의 자율을 중시하지만 기업 윤리는 이 회사 문화의 핵심이다. 이 회사는 지난 2000년 13개 항목으로 구성된 `사회정책`을 발표한데 이어 `지속성장조직(Sustainability Affairs)`을 통해 기업윤리 등 사회 정책을 총괄토록 했다. `지속성장상(Sustainability Award)`를 제정, 매년마다 사회정책에 기여가 큰 사원에게 3만 달러의 상금을 수여한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적 펄프ㆍ제지업체인 IP(인터내셔널 페이퍼)도 벌목나무보다 더 많은 나무를 심는 사업을 전개한다는 `자원관리책임서약`을 공표하는 등 3C 시스템을 제대로 이행하는 대표적 업체로 꼽힌다. 투명경영 출발점은 `지배구조` 깨끗한 기업경영의 출발점은 지배구조의 투명성에서 출발한다. 최근 노사 관계의 틀 속에서 독일식 경영이 비판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BMW의 지배구조는 우리 기업들의 미래 경영행태에 중요한 참고자료로 삼을만하다. BMW의 이사회 시스템은 회사의 경영을 진두지휘하는 `경영이사회`와 이를 견제하고 경영이사의 임명권을 갖는 `감독이사회`로 양분돼 있다. 감독이사회의 경우 주주와 노조 대표가 동등비율로 참석하며, 양측이 대립하면 주주측의 감사위원회 의장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한다. 감독이사회는 지난 2000년 로버사를 인수한 뒤 연속적자를 낸 책음을 멀어 피셔츠리더 전 회장을 전격 경질 하는 등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이처럼 감독이사회는 독일 기업의 엄격한 투명경영 의지를 실현하는 핵심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사외이사의 권한 보장을 통해 세계적 윤리기업으로 발돋움한 포스코는 그런 면에서 국내 기업들에겐 `투명경영의 교과서`로 불릴만하다. 전경련 관계자는 “포스코는`포스피아`로 불리는 전사적 자원관리(ERP) 시스템을 통해 회계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이를 사외이사와 글로벌 전문경영체제라는 `인적 투명성`으로 체화 하는 이중의 투명경영 장치를 확보했다”며 “국내 기업들도 이제 회계ㆍ윤리의 투명성과 함께 지배구조 부분에서도 선진모델을 공격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영기기자 yo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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