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군부 결국 쿠데타 선언

육참총장 "정파간 타협 실패"… 계엄령 이틀 만에 정부 장악
친정부세력 "시위 계속할것"

태국의 계엄사령관인 쁘라윳 짠오차 육군참모총장이 22일(현지시간) 오후 공식 쿠데타를 선언했다. 20일 계엄령만 발동한 채 과도정부와 반정부세력 간 협상을 중재하던 군부가 이틀 만에 전면에 나선 것이다. 이로써 태국은 1932년 입헌군주제 수립 후 19번째 쿠데타를 겪게 됐다.

쁘라윳 총장은 22일 TV 발표를 통해 이틀에 걸친 주요 정파 지도자 간 협상이 실패했다며 "치안유지사령부(POMC·현 계엄사령부)가 전국의 통제권을 장악했다"고 말했다. 그는 "신속히 평화를 회복하고 정치개혁을 이뤄야 한다"며 "모든 국민은 정상적 일상생활을 유지하고 정부도 변함없이 제 업무를 다해줄 것"을 요청했다. POMC는 이날 오후10시부터 다음날 5시까지 전국에 통행금지를 발동하고 태국 거류 외국인에 대해 적절한 보호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군부는 이와 함께 헌법의 효력정지도 선언했다.

군부의 쿠데타 선언은 과도정부 각료들과 반정부시위 지도자 수텝 트악수반 전 부총리를 비롯해 태국 내 각 정파 지도자들이 협상 테이블에 모인 가운데 이뤄졌다. AP통신에 따르면 각료들은 현재 군부에 의해 억류돼 있으며 수텝 전 부총리 등은 군인들에게 둘러싸여 협상장을 나가는 모습이 목격됐다.

방콕 등지에서 시위를 벌이던 반정부세력은 쿠데타가 선포되자 자진 해산했으나 친정부 진영은 시위를 계속할 뜻을 밝혀 군대와의 충돌도 예상된다.

군부의 이번 쿠데타는 2006년 무혈 쿠데타로 탁신 친나왓 전 총리를 몰아낸 지 8년 만이다. 군부는 잉락 친나왓 전 총리의 탁신 사면 시도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불붙은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 침묵을 지켜온 끝에 행동을 개시했다. 앞서 쁘라윳 총장은 20일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쿠데타와 엄연히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외신들은 '유사 쿠데타'로 평가하며 쿠데타로 발전할 수 있다고 예상해왔다.

과도정부를 밀어낸 군부의 다음 행보는 아직 불확실하다. 쁘라윳 총장은 재총선 실시와 같은 정국 안정화 일정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친탁신계인 과도정부는 오는 8월 재총선을 치르자고 제안했지만 반탁신 성향인 군부가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태국 정치연구의 권위자인 이병도 한국외국어대 태국어과 교수는 "군부 쿠데타는 예상된 수순이었다"면서 "2006년 쿠데타와 마찬가지로 헌법 및 선거법 개정과 같은 조치를 통해 반탁신 정당에 유리한 여건을 만든 뒤 총선을 실시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당시 군부는 쿠데타 이후 1년여간 임시정부를 운영하며 2007년 헌법을 수정한 뒤 그해 12월 총선을 치렀지만 친탁신계 정당의 승리로 끝났다.

이처럼 친탁신계 정당은 유권자 대다수를 차지하는 서민층의 지지가 확고해 선거에서 이를 꺾기 어렵다는 분석도 많다. 이 때문에 군부가 친탁신계 정당의 승리가 확실한 총선 대신 상원이 임명하고 왕실이 승인하는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고 이 교수는 내다봤다. 이는 반탁신 진영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방안이기도 하다.

여론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왕실이 향후 정국에 대한 방향을 제시할 가능성도 있다. 태국 군부는 전통적으로 왕당파 성향이 짙다. 특히 이번 쿠데타를 주도한 쁘라윳 총장은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왕실 근위부대에서 군생활을 시작한 골수 왕당파다. 2010년 5월 친탁신 진영의 대규모 시위 때는 강경 진압에 나선 전력도 있다. 당시 90여명이 숨지고 1,700여명이 다쳐 태국 현대사상 최악의 유혈사태로 기록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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