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단행된 유럽중앙은행(ECB)의 '깜짝' 금리 인하 결정은 현재의 '디스인플레이션'(물가 상승률 둔화) 국면의 타개를 위해 보다 적극적인 부양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금리 인하 결정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필요하다면 동원할 수단이 많이 있다"며 선제적 안내(forward guidance)에 나서는 등 추가 부양책 발표 가능성도 열어놨다.
이날 ECB의 금리 결정을 앞두고 블룸버그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금리 인하를 예측한 전문가는 전체 50명 중 3명에 불과했다. 그만큼 전격적이고 과감한 결정이란 의미다. 이날 전까지 ECB의 기준 금리는 0.5%에 불과했다. 사실상 '제로 금리'를 목전에 두고 있었던 만큼 추가적 금리 인하 단행을 위해선 좀 더 확실한 신호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할 것으로 보였고, 그만큼 금리 동결에 무게가 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ECB 금리 인하는 현재의 디플레 우려가 예상보다 심각하고 자칫 일본식 장기 불황에 유럽이 처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유럽은 지난 9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실업률이 12.2%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데 이어 10월 물가 상승률(예비치ㆍCPI)이 지난 2009년 11월 이후 4년 만에 최저인 0.7%에 머물면서 최근 디플레 리스크에 휩싸였었다. 10월 물가 수준(0.7%)는 ECB의 목표 최저치인 2.0%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특히 지난 5일 EU는 내년 유로존 국내총생산(GDP)이 1.1% 성장하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연초 전망치인 1.4% 보다 더욱 비관적인 수치를 내놓은 것이다. 경기 침체 가능성을 알리는 이 같은 연속된 신호가 결국 ECB를 향해 금리 인하 압박 요소로 작용했다.
실제 드라기 총재는 기자회견에서"물가상승률이 2%에 근접한 수준으로 오르기까지는 상당기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며 장기간 디스인플레이션이 지속될 것임을 인정했다.
ECB의 금리 인하 결정은 유럽의 '디플레 리스크'를 둘러싼 해결책을 놓고 논란을 더욱 부채질 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경제개혁센터(CER)의 경제학자인 시몬 틸포드는 현재의 유로존 경기 침체를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으로 규정하면서 "ECB의 통화 정책은 일관되게 경기 팽창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은 유로존이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느냐 마느냐에 기로에 있다"며 보다 강력한 경기 부양책 실시를 촉구했다.
현재 EU의 적극적 부양 정책을 지지하는 전문가들은 단순한 금리 조정을 넘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ㆍ연준)식 양적완화 ▦저금리대출프로그램(LTRO) 시행 등을 요구하고 있다. 시장에 적극적으로 돈을 푸는 방식으로 현재의 위기를 타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현재의 디플레 우려감이 지나치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독일 코메르츠방크의 외르그 크라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 같은 비관적 전망에 대해 "터무니 없다(ridiculous)"며 "현재의 낮은 물가 수준은 가장 큰 문제였던 스페인ㆍ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가 가격 경쟁력을 회복하고 있다는 긍정적 신호"라고 설명했다.
실제 최근 스페인은 2년 만에 처음으로 월간 GDP가 플러스로 전환했다. EU 내 대표적인 재정위기 국가인 스페인의 이 같은 반전은 유럽의 경기 침체가 긴 어둠의 터널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한편 ECB의 이날 금리 하락은 고공 행진 중인 유로 가치 하락에 도움을 줘 수출 경기 회복을 이끄는 데 동력을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카스텐 브라즈키 ING그룹 이코노미스트는 "ECB는 금리 인하가 디플레이션과 싸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지는 않을 것임을 안다"며 "(ECB의 결정은) 유로화의 추가적 인하를 겨냥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유로화는 디플레 신호를 본격적으로 알린 10월 CPI 발표 후 달러 대비 3% 정도 떨어진 상태다. 그러나 현재 1유로당 1.35 달러에 머물고 있는 유로화 가치는 지난 2월 이후 여전히 최고 수준이다. 그만큼 유럽 국가 수출 경쟁력에 치명타를 주고 있는 셈이다.
다만 드라기 총재는 회견에서 "환율이 우리의 정책 타깃은 아니지만 유로 가격의 안정성은 중요하다"면서도 "오늘 금리 인하 결정에 최근의 유로 강세는 고려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ECB 결정에 앞서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은 통화정책회의를 열고 0.5%인 현행 기준 금리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3,750억 파운드 규모의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지속키로 하는 등 적극적 경기 부양 정책을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