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Watch] 남자, 요리에 빠지다

가족·연인 위해… 혼자라도 잘 먹으려고…


대한민국 남성들이 요리의 세계에 빠져들고 있다.

결혼을 앞둔 예비신랑은 예비신부에게 점수를 따려고, 은퇴한 중장년층은 아내에게 '삼식이(직업 없이 집에 있으면서 하루 세끼를 꼬박꼬박 찾아먹는 사람)'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젊은 아빠는 아이들에게 간식 만들어주는 다정한 아빠가 되기 위해, 심지어 싱글남은 혼자서라도 잘 챙겨 먹으려고…. 본인이 간절히 원해서건 아니면 어떤 상황에 내몰려서건 상관없이 이런저런 이유로 요즘 한국 사회는 요리하는 남자가 요구되는 시대를 맞았다.

요리를 배우는 남성들이 증가하는 현상은 전반적인 사회의식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양성평등 사상이 확산되는 가운데 젊은 여성들이 '마초' 스타일의 남성보다 '부드러운 훈남'을 선호하고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는 여자친구나 아내를 위한 음식 만들기가 당연한 일이 되고 있다. 어린 자녀를 둔 아빠들은 엄마 대신 이들과 놀아주고 아이들에게 맛있는 간식을 만들어주며 친구 같은 아빠 '프레디(프렌드+대디의 합성어)'로 변신해 이전 세대와 다른 가족과의 관계 재정립을 해나간다. 고령화사회로 진입하면서 은퇴한 50~60대 남성들은 요리를 아내로부터 홀로서기 위해 꼭 갖춰야 할 스펙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다 경제적으로 윤택해지면서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취향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도 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가 지난해 말 출간한 '트렌드코리아 2013'에서는 올해 소비 트렌드 중 하나로 '미식'이 꼽혔을 정도다.

몇 년 전부터 유명 셰프가 스타급 셀레브리티로 떠오르는가 하면 식품업체나 지방자치단체 요리강좌에 참석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를 배우려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방송가에서는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쏟아지고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이색 메뉴와 개성 있는 레시피들이 소개되며 대한민국이 '미각의 제국'으로 변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며 먹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직접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요리로 자연스럽게 관심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요리 배우는 여건도 예전보다 훨씬 더 좋아졌다. TV에서는 단순히 맛집을 소개하는 차원을 넘어 연예인 또는 일반인 출연자가 만든 창의적 요리들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며 화제가 되는가 하면,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TV나 인터넷만으로 '요리고수'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요리강좌나 레시피가 마련돼 있다.

일각에서는 경기불황이 장기화하자 작은 소비로 만족을 극대화한다는 '립스틱 효과'처럼 맛있는 음식을 통해 원초적이면서 즉각적인 즐거움과 호사를 누린다는 느낌을 받는 '스몰럭셔리(small luxury)' 추구심리를 요리열풍의 한 원인으로 보기도 한다. 식품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식'이야말로 말초신경을 자극해 순식간에 즐거워지는 일"이라며 "한정된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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