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심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일부 생명보험사는 경쟁대열에서 낙오돼 간판을 내려야 했으며 근근히 영업을 유지하고 있는 생보사들도 새 주인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손해보험사들도 살아남기 위해 사력을 다하며 고객잡기에 나섰다. 내년부터 보험료율이 자유화되면 대형사들이 물량공세에 나서면서 중소형업체들을 압박할 경우 손보업계도 구조조정의 급류에 휘말릴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마지막 격전을 치르고 있는 보험산업의 현주소와 미래를 특집으로 꾸민다./편집자주
「세기말의 혈전.」
보험업계는 요즘 상황을 이렇게 요약한다. 보험사간 생존전쟁이 20세기 마지막 해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경쟁사보다 기발하고 참신한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해내느라 각사 중역들의 흰 머리가 날이 갈수록 늘어난다.
그러나 일부 초우량 보험사들을 제외하고는 「생존」이라는 철봉에 매달려있기도 벅찬 실정. 손을 놓는 순간, 회사의 운명이 「퇴출」이란 블랙홀로 사라진다. 따라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살아남아 21세기를 보기 위한 싸움」이다.
지난해 8월, 4개 부실사 퇴출로 촉발된 생보사 구조조정은 국민·제일생명 해외매각 성사에 이어 대한생명 등 6개 부실사 정리로 급피치를 올리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구조조정의 물길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거의 모든 보험사들이 올해를 무사히 넘길 것으로 보인다. 살아남아 21세기의 문턱을 넘는다 해도 보험사들의 앞에는 「더 무서운 정글」이 기다리고 있다.
21세기의 벽두는 보험가격 자유화로 시작된다. 가격 자유화는 보험사들의 피말리는 전쟁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각 사가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면서 보험료를 하향조정, 대대적인 판촉에 나설 것이기 때문. 고객들이 보험료가 싼 보험사로 몰리면서 일부 보험사가 「왕따」 신세로 몰리는 현상이 불거지게 된다.
게다가 정부는 보험사 부실여부의 판단기준인 지급여력비율을 지속적으로 강화, 「턱걸이」에서 떨어지는 보험사는 가차없이 정리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보험사로서는 이중부담에 시달려야 한다. 보험료를 깎아주면서 고객을 끌어야 하고, 한편으로는 보험금 지급에 필요한 넉넉한 자금을 확보해 두어야 한다. 큰 물에서 놀던 외국계 거대보험자본과도 힘겨운 경쟁이 불가피하다.
결국, 21세기 보험사들이 생존을 위해 넘어야할 고개는 하루가 다르게 높아질 전망이다. 지금까지는 감독 당국의 보호 아래 각사가 「온실」속 영업을 해왔는데 바야흐로 울타리가 허물어지면서 모진 자연 속으로 팽개쳐진 셈이다. 정부의 재벌 금융시장 진출 억제시책에 따라 계열사 지원도 기대하기 힘들어졌다.
이에 따라 보험업 종사자들의 시름도 깊어질 전망이다. 종신보험을 전담하는 「고능률 조직」들은 앞으로도 고액연봉시대를 구가할 것으로 보이지만, 대다수 사원과 생활설계사들은 회사의 내핍정책에 맞춰 20세기의 영화(榮華)를 포기해야 하는 지경에 몰릴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나라 보험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에 접어든 지 오래. 가구당 가입률이 80%를 넘어서고 있다.
「힘겨운 21세기를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이것이 보험사 CEO들에게 던져진 절대절명의 과제다. 보험사 전문가들은 『변화하는 기업에게만 미래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상품개발부터 판매, 조직관리, 자산운용을 비롯한 경영의 모든 것이 새 천년의 패러다임에 맞춰 환골탈태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험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고 있어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은 더이상 어렵다. 환경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유연성을 가진 보험사만이 21세기에도 생존할 수 있다.』 박종익(朴鍾翊) 동양화재 사장의 말이다.
이석용(李錫龍) 손해보험협회장은 『현재의 보험사 영업조직은 순노동집약적 시스템으로 이뤄져 있어 경쟁이 격화되는 21세기에는 이같은 인해전술식 전략이 먹혀들지 않을 것』이라며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뜯어고쳐야만 생존 공간을 차지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수창(李水彰) 삼성화재 대표는 『보험산업을 둘러싼 환경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며 『전례없는 시련에 대응할 수 있는 「고통스러운 적응」속에 자신을 변화시키는 기업에게만 21세기의 또다른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사들은 20세기 마지막 전쟁을 치르며 「항상 깨어있는 보험사」를 지향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깨어있는 것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게 경영자들의 중론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고객의 곁에 바짝 붙어있는 것 외에는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터넷 등을 이용한 사이버 경영이 급속히 늘어나는 것도 이 때문.
이에 따라 보험사 대표들은 「변하지 말아야 할 20세기형 전통이 있다」고 말한다. 오히려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보험사들은 보험업이 고객에게 행복과 만족을 주는 LOVE & PROTECTION 사업임을 명심해야 한다. 고객의 눈과 마음에 맞춰 자신을 바꾸지 않는다면 어려움을 겪을 것이 자명하다.』(박원순 SK생명 대표)
/한상복기자 SBHA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