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모직, 59년 만에 모태사업인 ‘모직’ 접어

3세 경영구도 정지작업 주목…소재부문 집중

제일모직이 모직사업을 포함한 패션부문을 에버랜드에 양도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1954년 원단 제조 등 모직물 사업으로 출발한 제일모직이 창립 59년 만에 모태사업을 통째로 넘긴 셈이기 때문이다.

제일모직은 매출의 70%를 전자재료·케미칼 등 전자소재부문 쪽에서 올려 이미 화학업종으로 분류되고 있다.

제일모직의 지난해 전체 매출은 6조99억원이다. 이 가운데 패션부문의 매출은 약 30% 가량인 1조7,751억원에 불과하다. 특히 모태인 모직부문은 브랜드부문에 밀려 그 비중이 패션사업의 1%에 지날 정도로 미미한 상태다.

‘모직’ 사업이 빠진 제일모직은 추후 사명을 바꿀 가능성도 있다.

제일모직 측은 “사명 변경에 대해선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앞으로 충분히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동안 제일모직 패션 부문은 전자소재 부문과 성격이 달라 사업분리에 대한 필요성이 주주들 사이에서 제기돼 왔다.

실제로 패션사업은 경기영향을 크게 타고 이익이 많이 남는 업종이 아니어서 제조업과 병행하고 있는 제일모직 입장에서는 계륵과도 같은 존재였다.

앞서 패션사업을 하던 삼성물산도 사업 효율화를 위해 1999년 7월1일자로 삼성물산 내 패션부문의 사업·인력을 제일모직으로 일원화시킨 바 있다.

제일모직 패션부문 직원들은 갑작스러운 사업양도 결정에 술렁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일모직 관계자는 “그룹 차원의 결정”이라며 “소재사업의 경쟁력 제고 외에 양도 배경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룹 차원에선 이미 오래 전부터 패션부문 분리를 고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윤주화 제일모직 패션부문 사장이 취임한 지 10개월 만에 내려진 결정인 만큼 윤 사장의 임무가 사업양도를 위한 준비작업이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패션부문 총괄인 윤 사장 부임 이전에는 사장 한 명이 전자소재와 패션사업을 총괄해왔기 때문이다.

윤 사장 부임 이후 10개월간 ‘효율화’를 부르짖으며 강도 높은 체질개선 작업을 해 온 것과 이번 사업양도 결정이 맞물려 있는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삼성그룹이 제일모직의 패션부문을 껴안을 계열사로 삼성 에버랜드를 택한 이유는 ‘B2C’ 기업이기 때문이라고 제일모직 측은 전했다.

삼성 에버랜드는 삼성그룹 내에서 호텔신라와 함께 양대 소비재 관련 계열사다. 현재 리조트·레저와 식자재유통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 같은 분리 배경을 두고 그룹차원의 후계 구도를 위한 정리작업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른바 ‘말랑말랑한’ 소비재 사업을 한 데 묶어 3세에게 넘겨주려는 정리작업이 아니냐는 것이다 .

제일모직 부사장직을 맡고 있는 이건희 회장 차녀 이서현씨가 삼성 에버랜드로 이동해 중책을 맡을지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패션 전공인 이서현 부사장이 제일모직에서 야심차게 패션사업을 추진해온 점에 비춰 이동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진다.

이부진 사장이 이끄는 호텔신라 사업이 자리잡은 만큼 삼성 에버랜드는 이서현 부사장에게 맡길 가능성도 있다.

한편, 패션업계는 삼성 에버랜드의 품에 안긴 패션사업이 앞으로 더욱 힘을 받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패션은 수직계열화로 인한 비용 효율화 보다 소비자 트렌드를 따라잡는 것이 중요한 사업”이라며 “소비재 기업인 에버랜드와 만나 시너지를 낼 수 있어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에버랜드가 비상장사인 만큼 분기별로 실적이 드러나는 부분이 없어 차기 핵심사업으로 삼은 에잇세컨즈 사업처럼 장기투자에 대한 부담을 더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디지털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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