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97> 당신의 청중은 누구입니까


송길영 부사장이 최근에 낸 책 ‘상상하지 말라’

/사진제공=북스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라” 옛날 어른들이 항상 강조하시던 말씀입니다. 상황과 경우를 가려 나서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가 옳다고 믿는 원칙, 가치에 입각하여 행동합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를 객관화하지 못합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맞이한 예수 그리스도가 신에게 고통스럽게 기도하며 인간을 향한 용서를 외쳤던 일화는 유명합니다. ‘아버지, 저들은 스스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나이다.’ 자신의 행동이 어떤 성격과 결과를 낳을지, 사람은 예측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습관대로, 아니면 자기의 선호대로 의사결정을 내립니다. 누구나 좋은 과실을 맛볼 수 있는 ‘호황’이라면 다행이지만, ‘불황’이 닥쳤을 때에는 위험천만한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영어를 잘합니다. 정말로요.’ 얼마 전 지인이 매우 웃긴 경우를 당했다며 저에게 들려준 말입니다. 누군가에게 급한 보고 자료의 영어 번역을 맡겼더니, 그가 졸속으로 만들어진 문안을 넘기면서 했던 말이라는 겁니다. 딱 봐도 큰 고민 없이 대여섯 시간 만에 20페이지를 써 내려간 것인데, 무슨 자신감인지 그 사람은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도 모른 채 장점만 피력하더라는 겁니다. 게다가 지인이 일을 맡긴 사람은 전문 번역가도 아닌 말 그대로 취미로 그 일을 하면서 제법 수입을 올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중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 감수를 맡겨야 했지만 지인은 참았답니다.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는 사람에게 따져봐야 소용없기 때문이죠.

기업도 비슷한 실수를 합니다. 자신들이 해 왔던 일, 하면 잘 되던 일의 렌즈를 가지고 새로운 시장과 소비자들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청중의 성격이 바뀌었는데도 배우 역할을 해야 하는 기업들이 입장을 전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선호와 관심사를 갖고 있는 2-30대 ‘청중’들을 기업이라는 배우는 파악하기 어려워합니다. 늘 만들던 ‘공산품’의 감성대로 젊은이들을 대해서는 큰 코 다치기 일쑤입니다. ‘핸드폰을 가급적 적게 보도록 유도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라며 대중들을 윤리적으로 계도하겠다는 식의 처신도 곤란합니다. 이제 당신의 청중들은 학습과 계몽을 원하지 않습니다. 단지 배려와 공감을 원할 뿐이죠. 그것도 적절한 품질과 가격에 말이죠. 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가치입니다.

소셜 빅데이터 전문가로 유명한 다음소프트의 송길영 부사장이 최근 집필한 ‘상상하지 말라’도 비슷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상상력이 화두인 시대에 상상하지 말라니 역설적인 느낌이 들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하느니 못한 어설픈 상상을 하지 말라’가 이 책의 주된 내용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의사결정자들은 자신의 어렴풋한 상상, 기존의 경험을 체험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던 습관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실수도 많고 돈도 많이 까먹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젊은이를 계도하려는’ 경영자들도 있었고, 30~50대 시장의 감성으로 10~20대 시장을 이끌고 나가려다 실패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과거에 자신이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오히려 데이터, 즉 사람들의 일상이 드러난 자료들 속에서 무엇인가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관찰의 힘이 강조됩니다.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 모두 관찰과 자기객관화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상상하지 말라’의 골자입니다.

맥베스는 말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가련한 배우라고. 팔스타프는 더 기가 막힌 말을 던집니다. 제 역할을 모르는 배우는 무대에서 끌어 내려진다고. 맞습니다. 당신의 청중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서 말과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면 그냥 바보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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