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은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이론을 발표했다. 자신이 전혀 제어할 수 없다고 느끼는 특정한 환경에 지속적으로 놓여 있던 사람은 그 환경을 바꿀 아주 쉬운 방법이 생겨도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하고 무기력한 상태에 머물게 된다는 이론이다.
그는 또 뒤에 '학습된 행복감'이라는 이론을 다시 발표했다. 그것은 '학습된 무기력'과 마찬가지로 행복감이나 긍정적인 감정 역시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나중에는 더욱더 빈번하고 쉽게 행복해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무기력도 행복도 모두 학습되고 바이러스처럼 전염된다는 것이다.
느닷없이 이 얘기를 꺼낸 것은 최근 지방자치단체들이 진행하는 축제에서 자주 터지는 대형 사고의 교훈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이번에 4명이 숨지고 70여명이 부상당한 사고가 난 화왕산 억새태우기 축제 역시 달집태우기 행사를 지난 1995년 민선이 시작되면서 규모를 키우다 화를 당했다. 경남 창녕군 공무원들이 경찰서에서 과실치사 혐의와 관련, '산림청 허가를 받았다' '방화선을 만들었지만 돌풍이 불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변명을 하고 있는 것도 다 '안전불감증 학습'의 산물이다.
11명이 압사한 경북 상주자전거축제 참사와 서귀포 시장이 탄 배가 뒤집혀 시장과 읍장ㆍ지역유지ㆍ선장ㆍ공무원 등 5명이 사망하고 실종된 제주 방어축제도 안전불감증이 불러낸 사고였다.
1995년 지방자치제도가 시작되면서 단체장들이 표가 있는 행사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도입해 '치적 축제'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문화관광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열린 축제는 1,176개로 지자제 도입 전인 1994년 287개보다 4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런 가운데 본지 취재 결과 지난해 153만여명이 관람해 문화관광부 4년 연속 최우수 축제로 지정된 진주 '남강유등축제' 역시 안전불감증에 노출돼 사고 우려가 커지고 있다.
4배나 비싸다는 비용때문에 강속에다 수중 지중선이 아닌 일반전기선(FCV)을 무려 3,000m나 넣어 220V 전류로 유등을 밝히고 있다는 게 확인됐다.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이미 '학습된 무기력' 속에 방치돼 있는 건 아닌지, '안전불감증' 바이러스가 이미 퍼질 대로 퍼져 있는 게 아닌지 주변을 세심하게 살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