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 최근 한진해운 주식을 담보로 1,500억원대의 자금을 수혈하자 당장 시민단체에서 이의를 제기했다. 경제개혁연대가 자금지원 철회를 요구하며 배임죄 성립 가능성 등 법적 문제가 적지 않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대한항공 입장에서는 펄쩍 뛸 일이다. 금융당국과 채권단의 동의하에 주식을 담보로 이뤄졌을 뿐 아니라 절차상 하자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외부에서 법적 시비를 할 수 있는 이유는 배임죄의 무원칙성에 있다는 것이 재계의 주장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고위관계자는 "현행 배임죄 구조를 보면 지원 당시 아무런 하자가 없어도 지원 받은 기업이나 지원한 기업에 추후 문제가 생기면 배임죄로 걸 수 있도록 돼 있다"고 지적했다.
4일 재계에 따르면 위기에 처한 계열사 지원에 나섰던 국내 유수 그룹들이 배임죄의 '고무줄 잣대' 때문에 합법과 배임의 기로에 섰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이나 채권단도 모기업이 위기에 처한 계열사를 도와줘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정착 합법적 절차로 자금을 지원해도 수년 뒤 배임죄라는 칼날을 맞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전경련 고위관계자는 "위기에 처한 계열사를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로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원하는 것이 맞는 방향이지만 정착 이것이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라며 "회생 가능한 기업을 도운 일로 최고경영자가 배임죄의 굴레를 써야 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이제 끊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배임 시비에 휘말린 건 대한항공뿐이 아니다. 지난 4월 만도가 위기에 처한 한라건설을 지원하자 금속노조 만도지부가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을 배임죄로 고소했고 현재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태다. 한라그룹 측은 "배임죄하고는 상관이 없다"고 밝혔지만 만도의 한라건설 지원의 배임 논란은 여전하다.
현행 배임죄는 계열사 지원시 의도(경영상 판단)와 과정ㆍ결과 중 어느 하나라도 '삐끗'하면 걸려드는 것이 현실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계열사에 지원한 기업이나 현재 검토 중인 기업들도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최준선 성균관대 교수는 "현행 배임죄는 그 행위의 결과와 상관 없이 위험하기만 해도 범죄로 취급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