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경제소사/11월24일] 스피노자 권홍우 편집위원 괴테는 그를 ‘신에 취한 사람’이라고 불렀다. ‘자연이 곧 신’이라는 범신론(汎神論)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니체는 그를 ‘선구자’, 엥겔스는 ‘변증법의 뛰어난 대변자’라고 여겼다. 그는 누구일까.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다. 스피노자의 첫 발은 사업가. 1632년 11월24일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나 유대계 학교에서 신학ㆍ수학에 두각을 나타냈지만 학문 대신 가업을 택했다. 아버지 미카엘은 스페인산 땅콩과 과일을 들여오는 수입상. 스피노자가 발을 들일 무렵 가업은 번창일로를 달렸다. 스페인에 항거하는 네덜란드 독립전쟁이 끝난 시점이어서 무역을 주도하던 유대인 사회 전체가 호경기를 누렸다. 호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영국의 절대권력자 크롬웰의 항해법 발표로 무역량이 줄어들고 네덜란드 경제가 불황에 빠진 탓이다. 부친 사망 직후인 22세부터 스피노자는 보석밀매에도 뛰어들며 회생을 위해 전력을 다했지만 종교의 벽에 막혀 사업을 접고 말았다. 유대교 교리를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파문 당했기 때문이다. 유대인사회에서 쫓겨난 24세의 청년 스피노자는 안경과 망원경에 들어가는 렌즈를 만들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경영자에서 엔지니어로 변신한 셈이다. 그는 렌즈뿐 아니라 사고체계도 갈고 닦아 ‘지성 개선론’, ‘데카르트 철학원리’ 등의 저작을 내놓았다. 대표작 ‘에티카’를 집필하기 위해 하이델베르크대학 철학교수 초청을 마다하고, 때로는 광신도의 암살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연구에 몰두하던 그는 1677년 45세의 짧은 생을 마쳤다. 가진 것 없이 살았고 사후에도 다양한 평가가 존재하지만 그의 언어와 정신은 세월을 넘어 이어지고 있다.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입력시간 : 2006/11/23 17: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