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아베 신조 정부가 장기 디플레이션 탈출의 '열쇠'가 되는 산업계 전반의 임금인상을 실현하기 위한 노사정 대타협을 구상하고 있다. 2월 아베 총리의 이례적인 임금인상 요청이 유통ㆍ자동차 등 일부 업계에 국한되는 양상을 보이자 각계의 고통분담을 통해 디플레이션 탈피에 속도를 내기 위해 노사정 3자협정을 모색하고 나선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4일 일본 정부가 고질적인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해 1980년대 네덜란드의 일명 '와세나 협정'을 모델로 삼은 노사정 3자협정을 구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와세나 협정은 자원에 의존해 고성장을 구가하던 네덜란드가 1970년대 이후 맞게 된 '네덜란드병'에서 벗어나기 위해 1982년 노사정 3자 간에 체결한 협정이다. 당시 네덜란드는 수출기업 경쟁력 악화와 10%대의 고실업률, 고물가, 재정악화 등 총체적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노조의 임금인상 요구 억제 ▦기업의 워크셰어링 도입 ▦정부의 법인세 감세 등 3자 간 고통분담에 나서 경제를 회생시켰다.
일본 정부가 구상하는 '일본판' 와세나 협정은 임금인상 억제를 축으로 했던 와세나 협정과는 반대로 임금인상이 목적이다. 기업은 비용증대를 감수하며 인건비를 올리고 노동계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한 규제개혁과 그로 인한 일시적 실업증대를 감수하며 정부는 임금인상 기업에 대한 혜택과 실업자 구제 지원안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는 일본 정부 내에서 아베 정권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 성장전략의 핵심 축으로 노사정 합의를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며 6월에 책정할 성장전략에 이 내용이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아베 총리가 이례적으로 기업에 직접 임금인상을 요청한 데 이어 노사정 협정을 염두에 두면서까지 임금 끌어올리기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구조적인 디플레이션의 고리가 인건비 하락에서 비롯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니혼게이자이는 버블이 붕괴된 1990년대 이후 일본 기업들이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정규직의 임금상승을 억누르고 저임금 비정규직 근로자를 늘린 결과 대량실업 사태는 모면했지만 구조적인 디플레이션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물가상승률 2% 달성을 목표로 내건 아베 총리는 이에 따라 지난달 기업들에 임금인상 동참을 요청해 일부 대기업들의 호응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임금인상 동참 기업이 비정규직 비중이 높은 대형 유통사와 엔화약세의 직접적 수혜를 입은 자동차 업체들에 그친데다 임금인상이 기본급이 아닌 상여금에만 집중되는 등 정부가 원하는 소비진작 효과를 내기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후지쓰ㆍ파나소닉 등 주요 전자업체와 조선업체인 IHI 등 상당수 대기업들은 오히려 임금삭감 쪽으로 기울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네덜란드 모델을 도입한 고통분담을 통해 디플레이션 극복의 핵심 요건인 임금인상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았지만 실현에는 적잖은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 실적회복을 체감하지 못하는 기업들을 설득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무엇보다 일시적 실업증가를 노동계가 받아들일지 여부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의 실업률은 4.2%를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