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 감독 "세상은 대통령 혼자서 바꾸는 게 아니잖아요"



'풍자의 달인' 장진 감독이 대통령을 소재로 한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로 돌아왔다. 영화는 임기 말년에 로또에 당첨돼 244억 원의 당첨금을 놓고 고민하는 노대통령(이순재)과 잘생긴 외모와 카리스마 넘치는 언변을 자랑하는 홀아비 대통령(장동건), 그리고 이혼 위기에 몰린 첫 여자 대통령(고두심)의 이야기를 다뤘다. 장진표 대통령 영화이기에 현실 정치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날 선 풍자를 기대한다면 오산. 영화에는 "시장가서 떡볶이 먹으면 뭐가 달라지나", "굴욕의 과거는 가지고 있어도 굴욕의 정치는 하지 않는다" 등 정치색 강한 대사가 등장하지만 정작 장진 감독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따로 있다. 장진 감독은 "그동안 대통령에 대한 바람이 커서인지 실망도 컸다. 그런데 어느 순간 결국 내 옆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결국 세상은 대통령을 포함해 우리 모두가 바꿔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것들이 이번 영화를 만들게 한 계기다"라고 말했다. - 대통령을 소재로 영화화하게 된 계기는. ▲ 시나리오가 작년 말경 나왔다. 이순재씨가 연기한 김정호 대통령과 장동건이 연기한 차지욱 쪽 에피소드를 생각한 건 6~7년 전이다. 대통령 이야기를 오래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에 대해 너무 엄숙하고 무게감이 있다. 대통령에 대한 바람이 커서인지 실망도 많고 누가 되더라도 세상을 바꾸지 못할 것 같은 실망감도 있다. 이 영역이 내 코미디와 잘 맞아 떨어진다 생각했고 결국 내 옆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세상은 대통령을 포함해 우리 모두가 바꿔야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호전적이지 않고 서로 이해하고 잘 가보자는 착한 영화가 나왔다. - 장동건, 이순재, 고두심 씨의 캐스팅 과정이 궁금하다. ▲ 세 배우 모두 시나리오와 내 일련의 작품 성향을 보고 수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확히 해야 했던 건 이 이야기가 정치적으로 날이 섰는지 대중적으로 편하게 갈 것인지를 구별하는 것이었다. 이 영화는 코미디 장르 안에 철저히 있는 영화다. 정치적 노선을 이야기하는 영화가 아니었다. - 사실 정치 비판이 철저히 배제돼 장진답지 않다는 평도 있다. ▲ 상업 영화 자본으로 상업 영화를 찍으면서 내 목소리를 낸다는 건 아니라고 본다. 만일 내가 싸우고 소리 지를 게 있다면 거리로 나가면 된다. 돈 벌겠다고 해놓고 운동을 한다면 치사한 일이다. - 캐스팅이 확정되고 든 생각은. ▲ 장동건을 비롯해 모든 배우들이 초반에 OK를 해줬다. 그런데 배우 세팅이 이렇게 되고 나니 부담도 컸다. 워낙 훌륭한 세 배우가 모이다 보니 영화의 결과를 놓고 연출이 도망갈 데가 없지 않나. 특히 장동건의 경우 이전 이미지를 잘 지키면서도 새로운 영역으로 도전을 시켜야 했다. 경계와 수위를 지켜가며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막상 두세 차례 촬영 후 안도감이 들었고 그 페이스대로 갔다. - 배우들이 캐스팅을 수락한 과정도 궁금한데. ▲ 사실 그 분들이라고 언제 또 대통령을 해보겠나. 꼭 그 분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 경력과 나이 대에서 최고의 이미지를 지닌 배우가 필요했다. 장동건의 경우 잘생긴 외모와 카리스마, 표준어를 바르게 구사하는 배우가 필요했다. 대중적으로 볼 때 이순재씨나 고두심씨도 마찬가지다. 그 연배 중 누가 봐도 최고로 인정할 배우 아닌가. - 완전무결한 이미지의 장동건이 방귀신이나 술주정 기자회견신 등을 능청스럽게 연기해 관객들의 폭소를 자아내는데. ▲ 그런 장면들이 영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감독으로서 배우에게 사소한 욕심이 있다면 배우가 대중에게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킬러들의 수다'의 (신)현준 형이 그랬다. 그 이전에는 모든 작품이 '장군의 아들'의 하야시 같았다면 '킬러들의 수다'에서는 릴렉스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았다. 장동건도 마찬가지다. 그는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인데 그동안의 캐릭터 자체에 여백이 없었다. 캐릭터 자체로 꽉 채워진 걸 하다 보니 숨이 돌아다닐 여지가 없었다. 다행히 그가 코믹하게 나온 장면들을 많은 분들이 좋게 봐주셔서 다행이다. 장동건에 대한 칭찬이 들릴수록 기쁘고 좋다. - 김정호 대통령 에피소드의 경우 이순재씨의 농익은 코믹 연기가 절정을 이룬다. ▲ 그런 면에서는 이순재 선생님의 전작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 만일 내가 그런 경험이 전혀 없는 어르신을 모시고 슬랩스틱 코미디와 만화적인 것을 요구했다면 아마 힘들었을 거다. '야동 순재' 이미지가 생긴 이후이기에 좀 과한 코미디여도 관객들이 친근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이다. 이순재 선생님께 큰 도움을 받았다. 내 능력 밖의 많은 것을 주셨다. - 반면 한경자 대통령 편에서는 웃음기를 줄였는데. ▲ 마지막 편에서 더 웃기겠다는 계획은 없었다. 연출의 큰 방향성에서 주말드라마 톤에 맞추려 의도했다. 아쉽긴 하지만 고두심 선생이 코미디를 못해서 안하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 한 두 군데 있다. 고두심, 임하룡 커플이 출연한 장면들은 영화의 대중적 연령 폭을 확 넓혀주는 역할을 했다. - 이순재씨나 고두심씨에게 디렉팅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 27세 때 처음 감독으로 입봉할 때부터 최종원, 양택조씨 등 어르신들과 작업했다. 그 분들이 연세가 있으셔서 무서워 보일 때도 있지만 얼마나 액티브하고 마음이 젊으신지 모른다. 아무리 감독이지만 나는 그 분들의 막내아들 뻘이다. 이순재 선생님이나 고두심 선생님과도 막내아들처럼 했다. 스태프들도 마찬가지다. 한창 일 할 나이신 분들에게 작품이 없다. 나는 경험과 연륜이 많은 분들과 함께 작업하는 게 좋다. - 청와대의 모습을 구현하거나 대통령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신경 쓴 부분은. ▲ 세트나 미술적 고증은 철저히 각 파트의 디자이너들의 몫이었다. 사실적인 공간 재현의 문제는 그들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맡겼다. 다만 대장으로서 예산을 원하는 만큼 못줘서 그들이 고초가 있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매일 9시면 뉴스 시간에 땡하고 대통령의 모습을 봐왔다. 어릴 때부터 대통령의 온갖 모습을 봤는데 무슨 특별한 연출이 더 필요하겠나. 청와대를 구현하는 데 특별한 조사는 없었다. 간접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수준에서 구현했다. - 각본가나 연출가로 1년에 한 편 이상 이름이 오르내린다. 연극 연출 또한 끊임없이 해왔다. 끊임없이 창작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인가. ▲ 운이 많이 따랐고 또한 내가 노력하는 시간들이 있다. 남들이 부러워하거나 시기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투자한 시간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 시간을 남들이 알아주기 바라지도 않는다. 글을 쓰다가 눈물도 나고 내 지능의 한계 때문에 수없이 엎어버린 것도 많다. 하지만 모두 내 책임이다. 그 무수한 날 들 동안 내가 피운 담배와 마셔댄 카페인, 밥을 언제 먹었는지도 모르게 빠져있었던 시간들. 하룻밤에 A4 10장의 재미난 이야기가 탄생하기도 하고 일주일이 지나도 아무 것도 써지질 않는 때도 있다. 그 순간들은 나도 모르게 지나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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