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서정진 "이젠 약장수로 돌아가야죠"

대표이사로 마지막 주총 … "해외판매·그룹 미래구상 주력할 것"
내달 대만·일본 시작으로 유럽·북미 등 줄이어 출장
내년 中 화장품공장 검토


"나는 약장수로 돌아갑니다."

셀트리온(068270)제약 주주총회가 열린 서울 강남구 건설회관에서 26일 서울경제신문 취재진과 만난 서정진(사진) 셀트리온 회장은 "나는 제약회사 회장이고 주업은 약을 파는 것인데 사무실에 앉아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며 "이제 내 약을 쓰는 약사와 의사들을 만나러 전 세계를 다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주총은 대표이사로서 서 회장이 진행한 마지막 주총이었다. 앞서 지난 20일 서 회장은 셀트리온 주총에서 회사 설립 13년 만에 셀트리온을 포함한 전 계열사 대표이사직 사임 의사를 밝혔다. 이날 역시 주총 직후 열린 이사회에서 김만훈 사장을 대표이사로 앉히고 서 회장은 이사회 의장직만 맡기로 했다. 그래서인지 주총 시작 5분 전에야 모습을 드러낸 서 회장의 모습은 검은 정장에 짙은 회색 넥타이로 차분한 인상을 풍겼지만 눈빛 만큼은 상기돼 있었다.

서 회장은 "지금까지는 전 계열사 대표이사직을 내가 맡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룹이 축성의 시기에서 수성의 시기로 전환됐고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야 할 때가 됐다고 판단했다"며 "일각에서는 발을 빼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는데 대표이사들은 제품개발을 철저하게 하고 품질·가격 경쟁력을 높이면 나는 이를 바탕으로 해외에 제품을 판매하고 그룹의 미래 전략도 구상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후 서 회장의 첫 행보는 해외 고객 미팅이다. 서 회장은 다음달 대만과 일본 등 아시아 주요국 출장길에 올라 고객과 유통 파트너들을 직접 만난다. 오는 5월에는 유럽, 6월에는 북미 출장 일정이 줄줄이 잡혀 있다.

최근 불거진 셀트리온헬스케어의 해외 상장 추진설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서 회장은 "회사와 주주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고 주요 주주들과 논의해서 결정할 것"이라며 "지금은 결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밝혔다.

이날 주총에서 서 회장은 제약과 화장품·발효식품을 3대 축으로 하는 생명공학 전문기업이라는 그룹의 미래 구상을 밝히고 대표이사직 사임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서 회장은 "화장품의 경우 2년 전 한스킨 인수 후 제품개발에만 1,500억원을 투입했고 내년에는 중국에 대규모 공장 설립도 검토하고 있다"며 "잔주름·미백 등 기능성 화장품을 위주로 제품개발은 셀트리온이 맡고 한스킨이 판매를 맡아 새로운 성장축으로 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식품 사업과 관련해서도 서 회장은 "혈전용해 효능이 뛰어난 낫토의 엔자임을 활용한 발효식품 사업을 본격화할 것"이라며 "현재 러시아에 여의도 10배 규모의 농장을 마련했고 올해는 서울시만 한 농장을 확보해 본격적인 개발·생산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한 시간 넘게 이어진 주총을 마치고 마지막 의사봉을 힘차게 두드린 서 회장은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시장이 열리고 나면 대한민국 600개 제약회사가 가야 할 길은 해외로 나가는 것뿐"이라며 "셀트리온이 중간에 주저앉아 이 길을 막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버텼고 이제는 회사의 주인인 주주들을 위해 힘차게 나아갈 일만 남았다"며 주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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