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제소사/5월26일] 드 무아브르

뉴턴이 말했다. ‘드 무아브르에게 물어보게. 나보다 많이 알고 있거든.’ 칭찬에 인색했다던 뉴턴이 극찬했을 만큼 그의 수학실력은 뛰어났다. 당시 최고의 시인이던 알렉산더 포프의 서사시 ‘인간론’에는 ‘드 무아브르 같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정교하게 거미줄을 짜는 거미의 집짓기 본능을 그의 기하학 실력에 비유한 것. 핼리 혜성을 발견한 핼리도 그의 재능에 감복했다고 전해진다. 아브라함 드 무아브르(Abraham de Moivre). 천재였지만 평생을 우울하고 궁핍하게 보낸 사람이다. 망명객이었기 때문이다. 1667년 5월26일 프랑스 상파뉴 지방에서 외과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가 영국으로 이주한 해는 1688년. 3년을 복역하고 나온 직후다. 18세 청년을 감옥으로 보낸 것은 종교. 위그노(프랑스 신교도)였던 그의 가족은 종교의 자유를 위해 영국을 찾았다. 30세에 왕립학회 회원으로 뽑혔지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원했던 교수 자리를 따내지 못한 드 무아브르의 선택은 커피하우스. 죽을 때까지 ‘슬로터 커피하우스’ 모퉁이에서 항해가, 선주, 보험 브로커 등에게 자문해주며 생계를 꾸렸다. 주고객은 도박꾼과 보험업자. 확률계산이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드 무아브르의 종모양 곡선’도 이런 환경에서 나왔다. 독립된 사건들이 어떻게 정규분포를 따르는지를 규명한 좌우대칭의 종모양 곡선은 확률과 경제학을 예측 가능한 과학으로 불러들인 계기로 평가되고 있다. 말년에는 눈까지 멀었어도 연구를 그치지 않았다. 죽을 날도 확률계산으로 예측해냈다. 계산대로 1754년 11월27일 사망. 87세였다. 생전에는 커피하우스의 지식장사꾼에 지나지 않았지만 후대는 드 무아브르를 경제사에 불멸의 업적을 남긴 인물로 기억하고 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