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선진국 수준에 근접해 있으면서도 아직도 영웅이 나타나 구출해 주기를 바라는 듯합니다. 영웅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노벨상 물리학 수상자 출신 외국인으로 지난 2004년 국내 대학 총장에 취임, 임기 4년의 절반만 채운 채 오는 13일 퇴임을 앞둔 로버트 러플린(56)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이 지난 2년간 한국에 머물면서 느꼈던 소회(所懷)를 책으로 펴냈다. 러플린 총장은 “한국에서 겪었던 갈등은 커뮤니케이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힘든 생활이었지만 이는 단지 정치적인 문제였을 뿐 퇴임 후에도 한국의 과학과 교육의 발전적 자문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환영”이라고 말했다. 그는 KAIST의 ‘사립화’와 ‘종합대학화’ 등 급진적 개혁안으로 교수들과 갈등을 겪었고, 노동 조합으로부터 명예로운 퇴임을 완곡하게 요구받기도 했다. 그는 그간 겪었던 갈등에 대해 “‘누가 과연 KAIST의 주인이냐’ 를 두고 일어나는 정부와 교수간의 상충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런 문제는 노조활동이 활발한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비일비재하다”며 “다만 한국에는 특정 기관의 내부갈등을 풀 수 있는 시스템이 허술해 문제가 더욱 커 보일 뿐”이라고 말했다. 책은 저자가 한국에서 느꼈던 점을 엮은 에세이다. 인상 깊었던 한국음식과 사물놀이, 은행에서 겪은 한국과학기술의 문제 등 짤막한 글에 자신이 직접 그린 삽화를 함께 실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교육자와 과학자들에게 남기는 메시지. 그는 “현대사회는 특정분야의 전문가보다 ‘전인적인 사람(Renaissance People)’이 필요한 시대”라며 “교육자의 가장 큰 역할은 학생들을 ‘훈련(training)’시키는 것이 아니라 ‘교육(educating)’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KAIST에는 MITㆍ스탠퍼드 등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우수한 학생들이 많다”며 “그러나 연구실적이 상대적으로 쳐지는 것은 성과를 내는 법적ㆍ제도적 장치가 부족한 탓”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