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아이돌 가수들이 철저한 기획 시스템과 독특한 육성 방법에 힘입어 해외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소녀시대, 빅뱅, 샤이니 등이 총 출연한 가운데 지난 10월 23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2010 코리안 팝나이트 콘서트' 장면. 사진제공=JS홀딩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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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29일 저녁 일본 도쿄국제포럼 홀A에서 열린 '2010 케이팝 나이트 인 저팬'에는 포미닛, 티맥스, 씨스타 등 한국 가수 8팀이 무대에 올라 5,000여명의 일본 관객을 사로잡았다. 5,000여석은 예약 접수 30분만에 만석이 됐다. 이에 앞서 23일 소녀시대, 빅뱅, 샤이니 등 인기 아이돌 그룹들이 총출동해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2010 코리안 팝나이트 콘서트' 역시 8,000석이 완전 매진됐다.
일본에서 발매된 소녀시대의 싱글 '지(Gee)'는 지난 26일 오리콘 차트 1위에 올랐다. 해외 여성 그룹이 오리콘 주간차트 톱3에 진입한 것은 1980년 영국의 여성그룹 놀랜즈가 '댄싱 시어터'로 2위에 오른 이래 30년만의 일이다.
한국 아이돌 가수들의 해외 시장 활약이 놀라울 정도로 눈부시다. 이들의 성공 배경에는 철저한 기획 시스템과 독특한 육성 방법이 자리하고 있다. 또 글로벌화와 현지화 마케팅을 적절히 섞은 기획사들의 글로컬리제이션 전략이 주효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철저히 기획된 ‘완성형 아이돌’= 소녀시대의 동갑내기 멤버 제시카와 수영, 효연은 데뷔한 지 3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가수 준비를 하는 ‘연습생’으로는 이미 7년을 보낸 베테랑이다. 가수가 되기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치열한 오디션을 뚫은 뒤 노래와 춤 등을 익히며 7년을 보냈다. 이들 연습생 가운데 최종 '낙점'된 9명이 ‘소녀시대’로 구성됐다. ‘카라’ ‘빅뱅’ ‘원더걸스’ ‘2PM’ 등 다른 아이돌 그룹도 오랜 연습생 생활을 거쳐 탄생했다.
이처럼 철저한 기획 아래 만들어진 아이돌 가수는 기업이 상품을 기획, 개발한 후 수십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시장에 내놓는 상품개발 시스템과 같은 프로세스다. 지난달 일본의 유력 경제주간지 닛케이 비즈니스가 소녀시대 사진으로 표지를 장식하고 실은 기사 '한국의 성장기업, 소녀시대와 닮았다'도 이런 점을 지적한 내용이다.
특히 한국 아이돌 가수들의 합숙 문화는 군대식 육성 시스템을 접목한 한국만의 노하우로 꼽을 만하다. 회사에서 제공한 숙소에서 함께 살면서 도우미들이 해주는 밥을 먹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훈련하면서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회사의 기획은 보컬 트레이닝이나 춤 연습처럼 일의 측면뿐 아니라 식단조절ㆍ체력단련ㆍ사생활 관리 등 생활 전반을 아우른다. 교육 역시 보컬과 안무는 기본이고 화술이나 연기, 심리 치료 등까지 이루어져 단순히 ‘가수 교육’의 차원이 아니라 ‘양육’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그야말로 ‘인생을 걸고’ 갈고 닦는 시간을 거치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완벽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프로페셔널한 완성품 아이돌에 전세계가 열광하는 것이다. 고이케 가즈히코(小池一彦) 일본 유니버셜뮤직 사장은 “곡, 가창력, 춤, 비주얼, 엔터테인먼트 5대 요건이 완벽한 프로 수준이며 일본에는 일찍이 이런 형태의 그룹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국 아이돌을 평가했다.
◇애초부터 글로벌화가 목표= 아이돌의 성공은 한정된 내수 시장만 바라볼 수 없는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몇년 전부터 아예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두고 ‘기획’ 가수들을 육성해온 전략의 결실이기도 하다.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 SM엔터테인먼트는 일본, 중국, 미국 등에 지사를 설립했으며 JYP엔터테인먼트 역시 뉴욕에 주요 거점을 확보했다. 중국에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슈퍼 주니어, 한국ㆍ중국ㆍ미국 등에서 캐스팅한 다국적 걸 그룹 ‘에프엑스’(Fx)와 ‘미쓰에이’, 동남아시아에서 인기 높은 ‘투피엠’(2PM) 등은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기획된 가수들이다. 이들은 해외 시장에서 문화적 이질감 없이 소비자에게 다가설 수 있도록 멤버 가운데 중국이나 대만계 미국인, 태국인 등 다양한 국적 출신을 포함시켜 글로벌화와 현지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한국 대중음악(K-Pop) 수준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확보한 것도 해외 소비자들에 어필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삼성경제연구소 정태수 선임연구원은 "미국 팝에 대한 경험이 많은 실력파 재외 교포 및 유학생들이 작곡가, 프로듀서, 그룹 멤버 등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음악 콘텐츠 수준 향상에 기여했다"고 말했다.
나정윤 서울종합예술학교 실용음악부 학부장은 "엔터테인먼트 시장이 개인 매니저 시대를 거쳐 전문 기획사,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글로벌화는 업계 진화의 필연적인 방향"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