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 탑골공원과 종묘공원 일대, 노인들이 주로 찾는 지역이다. 왜 노인들은 이 곳으로 모이는 걸까. 또래 노인들이 모여서(?) 운이 좋으면 무료 배식으로 한끼를 때울 수 있어서(?) 물론 이런 이유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마땅히 갈 곳이 없어서다. 국가에서는 노인들의 복지를 위해 다양한 정책들을 내놓고 있지만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당사자인 노인들의 불만이 더욱 크다. 10일 오전 종묘공원에서 만난 한모(74)씨는 “집은 구리인데 거의 매일 와서 시간을 때우다가 간다”며 “집 근처에는 갈 데도 마땅치 않고 집에선 며느리 눈치가 보여 그나마 여기 오는 게 유일한 낙이다”고 말했다. 옆에 있는 이모(72)씨도 “경로당이나 복지관에 가봐야 재미도 없어 안 간지 오래다”며 말을 거들었다. 가정과 사회를 위해 한평생을 바친 실버세대들. 은퇴 이후에 남은 여생을 즐기며 지내고 싶지만 그들은 갈 곳도 없고 할 일도 없다. 안필준 대한노인회장은 “현재 530만 노인 중에서 복지관에 가는 사람들은 40만명 정도, 경로당에 다니는 사람이 250만명 정도 되는데 아침부터 가서 하루 종일 있는 것도 아니고 매일 가지도 않는다”며 “가장 큰 이유는 재미가 없어서”라고 지적했다. 노인들의 여가선용에 대한 욕구는 점점 커지고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은퇴이민자가 늘어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복지에 있어서 해외에서는 경제적인 욕구부터 심리사회적인 부분까지 제도적으로 접근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임기응변식”이라며 “노인들의 연령별 인생발달주기에 따라 원하는 서비스를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인들을 위한 주거시설도 현실과는 딴판이다. 노인을 위한 임대주택은 이제야 도입되고 있고 유료노인복지주택(실버주택)은 웬만한 아파트 가격에 월 100만원이 넘는 이용료를 내야 해서 상류층이 아니고서는 그림의 떡이다. 민간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짓고 금융ㆍ세제지원을 더욱 과감하게 해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신체적ㆍ정신적으로 건강한 노인은 그나마 선택의 여유라도 있지만 병약한 실버세대는 복지시설에 의지해야 한다. 문제는 비용이다. 김희철 노인복지시설협회장은 “어르신들이 요양시설에 입소하려면 매월 50만원 가까운 돈이 드는데 노인들은 부담이 커서 이용을 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지적했다. 갈 곳 없는 노인들은 그들만의 일탈을 꿈꾼다. 동네 곳곳에 ‘노인 전용 콜라텍’이 늘어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그렇게라도 해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은 다행이다. 몸이 불편해 그마저도 못하는 시니어들은 무력감과 상실감만 커진다. 우리나라 우울증 환자 3명 중 1명이 노인이다. 우울증에서 끝나면 다행이다. 노인 자살률은 매년 급증하고 있다. 몸도 지치고 마음까지 지친 노인들의 최후의 선택은 비참함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