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 사태와 관련해 서방의 제재 압박에 대한 대응으로 '이란 핵 협상' 카드를 꺼내 들었다. 크림반도에서는 우크라이나가 철군을 선언하는 등 급속히 러시아화가 진행되고 있다.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은 19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주요6개국(P5+1)과 이란 간 핵 협상 실무회의 후 인테르팍스통신에 "이란 핵 협상을 우리 문제에 이용할 생각은 없지만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상황을 몰고 가면 입장을 바꿀 수 있다"고 밝혔다. 서방의 제재 압박에 대한 러시아의 보복조치 가운데 하나로 거론되던 이란 핵 협상에서 '몽니'를 부릴 가능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이란 핵 협상과정에서 러시아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서방으로서는 러시아가 협조하지 않을 경우 협상이 큰 난관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AP통신은 "러시아의 반격 중 가장 수위가 높다"며 "최악의 경우 핵 협상 결렬도 가능하다"고 전했다.
이에 맞서 서방에서는 영국이 이날 향후 25년간 러시아에 대한 천연가스 등 에너지 의존 축소를 제안하는 등 20~21일 열릴 EU 정상회의에서 추가 제재를 논의하지만 러시아에 제동을 걸 만한 뾰족한 수를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다. 호주가 오는 11월 브리즈번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 러시아 참석 금지를 검토하는 게 고작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이날 NBC 방송에 출연해 군사개입 가능성을 배제함에 따라 선택지는 더 줄어들었다.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 내의 통제권을 상실해온 끝에 철군을 선언, 러시아의 완전한 장악이 눈앞에 다가왔다. 안드리 파루비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방위원장은 "크림반도의 장병 및 가족 2만5,000여명의 우크라이나 본토 재배치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충돌을 막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지만 뉴욕타임스(NYT)는 "우크라이나가 항복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장악 이후 러시아군과 친러 자경단이 기지에 억류한 상태였는데 세바스토폴에서는 친러 자경단에 우크라이나군이 축출당하기도 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내 자산인수도 착착 이뤄져 파이낸셜타임스(FT)는 러시아 측이 이미 우크라이나 국영 에너지 기업 '초르노모르나프토가스', 석유운송 업체 '페오도시아' 등을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과거 우크라이나에 속했던 크림반도 내 모든 항만도 새 자치기구로 넘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크림반도가 경제적으로 러시아의 애물단지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크림반도 지역은 지난해 38억흐리브냐(약 4억달러)의 재정수지 적자를 기록했는데 이것이 고스란히 러시아 몫이 된다는 의미다. 크림반도의 경제를 지탱하기 위해 러시아가 투자해야 할 자금은 5억달러 수준으로 추산된다. 러시아가 이날 발표한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 사이 케르치해협을 잇는 교량 건설사업만 해도 실제 건설비용은 9억달러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120억달러의 재정적자를 안고 있는 러시아 경제에 또 하나의 그림자를 드리울 수밖에 없다. 미 경제전문지 포춘은 "크림반도는 경제적 실패자"라며 "우크라이나로서는 러시아에 경제적으로 피해를 입힐 좋은 기회를 얻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