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휘발유가 물보다 싸다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택시 운전사 하이메 티노코는 30년도 더 된 고물 자동차를 몰지만 기름값 걱정을 하지 않는다. 차 연료 탱크를 완전히 채우는 데 단 2달러 30센트면 충분하기 때문. 세계적으로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각 국에서 치솟는 연료값으로 비상이 걸렸지만베네수엘라에서는 '딴 나라' 얘기라고 로이터 통신이 10일 소개했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제5대 석유수출국이기도 하고, 이 나라를 1999년부터 통치하고 있는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연료값을 거의 '똥값'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보조금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이라고 통신은 전했다. 베네수엘라의 휘발유 가격은 갤런 당 12센트로 세계에서 가장 싸다. 운전자들이 자동차 연료 탱크를 완전히 채우는 데 드는 비용은 값싼 아침식사보다 적게 든다. 베네수엘라인들은 휘발유 가격이 미네랄 생수보다 싸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다. 지난달 발간된 국제통화기금(IMF) 보고서도 베네수엘라의 휘발유 가격은 현재세계 최저로 세계적인 원유생산국 사우디 아라비아와 비교해도 약 3분의 1 수준이라고 밝히고 있다. 베네수엘라 도로에는 70년대 차량도 버젓이 다니고 있어 연료비 걱정이 없음을대변하고 있다. 이같이 낮은 연료 가격은 최근 세계제1위의 원유국으로 부상한 베네수엘라에서태어난 데 따른 당연한 권리로 여겨지고 있다. 일부 시민들은 미국이 다른 모든 것은 다 하면서도 연료가격을 낮게 유지하기위한 조치는 왜 안하는지 냉소적 반응을 보인다. 여기에 차베스 대통령은 국내 연료 보조금 정책에서 나아가 미국에서도 난방유를 40% 할인된 가격으로 공급해 자신과 극도로 대립하고 있는 미국 정부에 미묘한공격을 가하고 있다. 날로 늘어나는 석유 수입으로 차베스 대통령은 중미권과 카리브해권 국가들에싼 가격으로 원유를 공급하면서 역내 지지기반을 쌓는데도 여념이 없다. 하지만 차베스 정부의 휘발유 보조금 정책은 일반 소비자들이 불필요하게 에너지 소비를 늘리고 국고의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는 비난이 국내에서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연료 보조금 정책의 혜택이 빈민보다는 중상류층에 돌아가고 있다고지적한다. 에너지 문제 저술을 준비하고 있는 석유 엔지니어 호세 루이스 코르데이로는 "기득권층은 이 정책을 '후드 로빈' 보조금이라고 부른다"면서 "부자의 재산을 훔쳐내 빈민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정반대"라고 말했다. 그는 또 연료가격을 시장에 맡겨두었더라면 작년 한해 국고수입이 국내총생산(GDP)의 약 8%인 80억달러 정도 늘어났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싼 휘발유가 넘쳐 나면서 인근 콜롬비아로 밀수출하는 사례도 늘고 있고 남부접경지에서는 브라질 운전자들이 연료를 넣기 위해 길게 줄을 서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지난 80년대 말 경제침체기 연료가격 인상이 주민폭동을 가져왔고 이후정치혼란을 잘 알고 있는 차베스 대통령의 '물값 휘발유' 정책은 계속될 것이라고 로이터는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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