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외환위기 당시 IMF가 내린 고금리 처방을 강력하게 비판해 우리나라에서도 적지 않은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제프리 삭스. 미국에서는 그를 로렌스 서머스, 폴 크루그먼과 함께 ‘경제학계의 3대 슈퍼스타’로 부른다. 하버드대학교를 최우등생 졸업. 29살에 하버드대학교 최연소 정교수. 그의 이 같은 탁월한 학문적 재능은 그가 국제 사회에서 주목 받는 이유의 일부일 뿐이다. 1980년대부터 그는 폴란드, 러시아, 볼리비아 등 대외채무와 인플레이션으로 고통 받는 발전도상국과 시장경제로의 전환에 어려움을 겪는 사회주의 국가를 위해 경제 정책 조언을 해주며 세상의 조명을 받기 시작한다. 1986년부터 4년간 볼리비아의 대통령 경제자문관으로 활동하며 4만%가 넘는 인플레이션을 10%대로 끌어 내렸던 공적은 신화와 같은 일화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을 끄는 진짜 이유는 그가 경제 이론가에 그치지 않고 열정적인 실천가의 모습을 띠고 있다는 데 있다. 이 책은 바로 그의 실천적 이론가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2000년 UN에 의해 결성된 인류의 공동발전과 번영을 위한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태스크포스팀 일원으로서 활동하면서 그는 극단적인 빈곤을 종식시킬 수 있는 길에 관심을 둔다. 빈곤에 대한 해결책의 출발점으로 그는 빈곤의 원인이 무엇인지 분석하기 시작했다. 흔히들 아프리카나 아시아 빈곤의 이유를 만연한 부패와 잘못된 통치 탓으로 돌리지만 그는 나쁜 통치구조를 비난하기에 앞서 좀더 신중할 것을 주문한다. “지난 10년동안 나는 가나ㆍ말라위ㆍ말리ㆍ세네갈 등과 같이 아프리카에서 비교적 통치가 잘된 나라들이 번영에 실패한 반면 방글라데시ㆍ인도ㆍ인도네시아ㆍ파키스탄처럼 광범위한 부패를 안고 있다고 인식된 아시아 사회들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과정을 직접 확인했다.” 그는 아프리카가 겪고 있는 곤경의 뿌리 깊은 원인이 정치체제 보다는 질병과 기아ㆍ낮은 교육수준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기아와 질병으로 인해 어린이들은 학교에 결석하게 되고, 교육 혜택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고급 기술을 익혀 소득을 높일 기회를 박탈당한다. 이는 장기적으로 국가 경제 발전의 선순환을 가져올 토대를 구축하거나 일자리를 창출하는 자본 축적을 가로막게 된다는 것이다. 질병과 기아, 적은 교육 기회로 인해 발생하는 이 같은 빈곤의 사슬을 끊기 위해 그가 내세운 해결책은 전 세계의 부국이 힘을 합쳐 적극적인 원조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 전 세계의 부국이 힘을 합쳐 외국원조를 향후 10년 동안 1,350억 달러에서 1,950억 달러 수준으로 올린다면, 세계은행이 하루 소득 1달러 이하라고 규정한 극빈층을 2015년까지 반으로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혹자는 이 같은 인도주의적 해결책을 내세운 그를 “구약 성경의 예언자로 돌변한 경제학자”라고 꼬집는가 하면 지나친 이상주의자라는 빈정거린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단호하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은 극단적 빈곤을 끝내자는 것이지 모든 빈곤을 끝내자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세계의 소득을 공평하게 나누거나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사이의 소득 격차를 줄이자고 하는 것도 아니다. 오늘날 부자들이 최대한 할 수 있는 일은 극단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집어 삼키고 있는 빈곤 함정에서 그들 스스로 벗어나도록 일정한 지원을 계속 제공하는 일이다.” 그는 40% 가까운 인류가 빈곤으로 인해 고통 받는 지구촌에 희망의 경제학이란 씨앗을 심으려 하고 있다. 볼리비아, 폴란드, 러시아, 중국, 인도, 케냐의 생생한 현장 사례와 IMF, 세계은행, OECD 등 국제기구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뽑아낸 방대한 자료는 그의 결론이 단지 감상적인 온정주의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