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 있고 고급스러운 취미의 하나로 '정원 가꾸기'가 있다. 주변 환경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는 한국의 자연친화적 조경도 훌륭하지만, 정원으로는 '일본식 정원(Japanese Garden)'이 유명하다. 일본의 귀족문화가 절정을 이룬 헤이안(平安) 시대에 그 틀을 확립한 일본식 정원은 훗날 유럽에까지 건너갔고 프랑스 지베르니에 위치한 인상주의의 대표화가 모네의 일본식 정원은 손꼽히는 관광명소 중 하나가 됐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정원 만들기에 대한 논문이자 실무적 지침서인 '사쿠테이키(作庭記)'가 마침내 국문으로 번역, 발간됐다. 헤이안 시대 사람들이 정원에 담아낸 의미들을 적은 책이지만 크게 보면 고대 동양세계의 문화가 축적된 명저이자 당시 동아시아의 문명교류사도 짐작할 수 있게 만드는 책이다.
"땅과 연못의 모양에 따라 각 장소에 맞는 풍정(風情)을 구상하면서 자연풍경을 회상해'그 장소는 이와 같았구나'하고 견주어 생각하면서 정원을 만들라."(원문 33쪽)
정원을 만들 때 여러 지방의 명승들 중 인상적으로 봤던 풍경을 내 것으로 가져오라는 제안이 흥미롭다.
또한 책에서는 '돌을 놓는 일'과 '정원만들기'가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돌은 정원의 구조재에서부터 형상을 표현하는 데까지 두루 쓰였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일본 정원이란 돌의 언어로 묘사된 자연풍경의 시"라고도 표현한 바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책에 등장하는 정원만들기의 원리 중 상당 부분이 중국과 한국에 연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석정(石庭) 양식인 가레산스이(枯山水)의 선구적 내용이 책에 등장하는데, 미학과 조경학을 전공한 번역자 김승윤씨는 이것이 경주 안압지 정원에 적용된 방식과 연결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같은 뿌리에서 나왔으되 다르게 꽃핀 동양의 정원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기에 유익한 책이다. 2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