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도중 피고인이 무죄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제출하지 않아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에는 재심을 통해 구제 받을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지형대법관)는 16일 강간상해 등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은 안모(43·수감 중)씨가 ‘잘못된 증거로 형을 살게 됐다’며 낸 재심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소송 절차 중에 증거를 제출하지 못한 데 과실이 있는 경우에는 재심 사유인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다만 “새로 드러난 증거가 ‘무죄를 입증할 명백한 증거’인지는 해당 증거만을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고 기존 증거와의 연관성을 고려해 평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새 증거의 가치만을 기준으로 재심 여부를 판단하도록 한 기존의 일부 판례는 변경됐다.
대법원은 그러나 이 사건에서 “비록 국과수 감정 당시 정자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피해자의 몸에서 채취한 가검물의 보존 상태에 따라 정자가 소실되는 경우도 있어 범인이 무정자증이라는 사실은 결정적인 증거로 볼 수 없다”며 안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검찰은 피해 여성의 몸에서 정액 양성반응이 나왔지만 정자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 결과를 토대로 ‘무정자증’으로 추정되는 안씨를 기소했고 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
이후 안씨는 교도소 정액검사에서 자신이 ‘무정자증’을 앓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재판을 다시 해달라”며 재심을 청구했지만 원심은 “안씨가 재판 과정에서 ‘무정자증’이 아니라는 정액검사 결과를 제출할 수 있었음에도 본인의 과실로 그러지 않았다”며 청구를 기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