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천사가 필요해
윤태건 T-플랫폼 대표
“천사(엔젤 투자자)가 되지 않으시렵니까.”
3년 전에 미술품을 투자 대상으로 한 ‘아트펀드’를 계획한 적이 있었다. 물론 계획한 사람이 펀드의 ‘펀’자도 모르는데다 미술시장의 환경이 워낙 척박하다 보니 금방 흐지부지돼버렸다.
계획이라고 하기에는 낯간지러울 정도로 구체적이지 못했고 투자할 만한 분들도 많지 않다 보니 그야말로 아이디어에서 끝나고 말았다. ‘아트펀드’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도 어쩐지 창피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당시에만 하더라도 부동산시장이 워낙 활기를 띠고 있고 주식시장도 나름대로 수익률이 높은 편이라 시중의 여유 자금이 국내에서 한번도 조성된 적이 없고 생소한 ‘아트펀드’에 투자한다는 것은 꿈만 같은 일이었다. 그야말로 ‘엔젤 투자자’가 필요했다.
더구나 전문가의 도움 없이 체계적이고 신뢰감 있는 포트폴리오를 짠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나름대로 작품의 값이 대폭 오를 확률이 높은 젊은 작가와 환금성이 보장되고 리스크가 적은 대표적인 작가, 그리고 이미 미술시장이 안정화되고 수익률이 보장된 해외작가의 작품으로 주먹구구식이지만 포트폴리오를 짜보기도 했다.
하지만 500억원도 안될 정도로 미술시장의 규모자체가 워낙 영세하고 법과 제도마저 아트펀드를 조성하기에는 걸림돌이 돼 보였다. 당연히 엄청난 위험 부담이 있었다. 아무리 천사라도 망설이기 마련이었다.
지난해 영국에서 3억5,000만달러(약 4,200억원) 규모의 아트 전용 펀드가 생겼다고 한다. 최근 미국에서도 1억~1억5,000만달러(1,00억~1,500억원) 규모의 ‘펀우드 미술품투자회사’도 생겼다.
규모도 규모지만 ‘아트펀드’가 조성될 수 있는 미술시장의 환경과 펀드에 참여하는 투자자들의 문화적 마인드는 부러울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의 미술품에 대한 투자 수익률은 연 11.1%를 기록, 주식투자 수익률보다 높다. 이 같은 수익률은 아트프라이스닷컴과 ‘메이&모제 미술품지수’의 분석결과에서 나타난 것으로 미국 뉴욕증시의 수익률은 10.7%로 조사됐다.
올해에는 특별히 미국 미술시장이 호황이다 보니 30~40%가량으로 수익률을 예상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까지 평균 수익률이 최소한 10%를 넘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아울러 미술품 구입이나 미술관 등 공공기관 기부 때 세제혜택, 상속 때 절세수단으로 종종 활용되는 이점을 감안하면 실제 수익률은 이보다 훨씬 높다고 봐야 할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기관투자가들이 미술품 투자를 포트폴리오의 한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도 미술품이 그만큼 투자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VIP 대접’은 물론이거니와 사회적으로도 우아해지고 고상해지는 것까지 ‘덤’으로 따라온다.
한국 미술시장은 10년 넘게 불황의 늪에 빠져 있다. 아직 불황의 터널을 빠져 나오지는 못했지만 내년부터 기업의 미술품 구입을 ‘비업무용 자산’에서 ‘업무용 자산’으로 인정하는 법안이 시행될 예정이고 작품 구입과 기부 시 각종 세제혜택이 주어지며 간접자산운용법안 개정에 따라 미술품을 대상으로 한 펀드가 조성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열리게 될 것 같다.
또 최근 부동산ㆍ주식ㆍ금융상품 등 적당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떠도는 시중의 여유 자금을 생각하면 국내에 ‘아트펀드’가 생기는 것도 전혀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실제로 서울 옥션에서 내년에 아트펀드를 조성하기 위해 금융권과 협의하고 있다고 하니 길이 열린다면 미술시장도 덩달아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누가 먼저 시작하든 간에 ‘아트펀드’가 생긴다는 것은 미술품이 투자가치로서의 매력을 되찾는 것이기도 하고 불황에 허덕이는 미술시揚?숨통을 틔우는 좋은 계기가 될 것 같다. ‘아트펀드’를 조성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엔젤 투자자 필요한 때다. 미술시장의 천사를 만나고 싶다.
입력시간 : 2004-12-03 1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