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화 내세워 “시장원리에 맡겨야” 주장만/불간섭 입장불구 상승땐 물량확대 “두얼굴”/“투자자 희생시켜 예산확보” 공기업주 매각 비판비등한보, 삼미그룹의 연쇄도산 및 김현철 파문 등 시장외적 악재로 주식시장의 「침체의 골」이 더 깊어지고 있음에도 불구, 증권당국은 느긋하기만 하다.
지난 96년까지만해도 주가가 급락하면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주식시장 안정화 조치를 잇달아 쏟아내던 재정경제원이 올들어서는 조용하기 만하다.
재경원 관리들 역시 현재의 주식시장 상황을 공황상태라고 진단하고 있으면서도 주가회복을 위한 대책마련에는 인색하다.
증권당국자들은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선진화되기 위해서는 시장의 수급논리를 중시하는 정책이 우선돼야 한다는 원칙론만 되풀이하고 있다.
실제로 재정경제원은 지난해 4월 주가지수 선물시장을 개설한 이후 같은 해 5월 증시안정화기금을 해산하며 『앞으로의 주식시장은 시장경쟁 논리에 철저히 순응하는 자율화 시대를 맞았으므로 정부가 더 이상의 시장 개입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게다가 한동안 우리나라의 OECD(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 Development: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 등을 빌미로 인위적인 주식시장 개입이 불가능하다는 논리를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증권전문가들은 증권당국이 증시자율을 앞세우는 것은 주식시장을 살릴만한 묘안이 없는데다 설사 대책을 마련한다 해도 「잘해야 본전」인 주식시장의 생리를 잘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다시말해 주가가 오르든 떨어지든 가만히 있는 것이 상책이라는 계산이다. 그러나 정부는 주가가 오르거나 오를 기미가 있으면 증시자율이라는 방패를 내던지고 증시 물량을 대폭 늘리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일례로 주가가 회복세를 보이던 지난 93년 11월이후 정부는 총 8회에 걸쳐 2조7천5백42억원에 달하는 정부보유 공기업주식을 매각했다.
이 때마다 정부는 매번 단기적인 수급개선책을 마련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에도 한국통신 주식을 추가 매각하면서 종합주가지수가 문민정부 초기의 수준인 6백50포인트대로 하락하자 연기금을 동원, 발빠르게 주가받치기에 나섰다.
시장경쟁 논리에 따라 인위적인 주식시장 개입은 없을 것이라고 천명하던 정부가 결과적으로 스스로의 명분과 논리를 깨뜨리면서까지 「보유주식의 현금화」에 열을 올린 것이다.
최근에도 정부는 한국통신주식의 상반기 상장 약속에 대해 『대국민약속(한국통신 상반기 상장)을 지키되 공급물량 부담에 버금가는 주식 수요 창출 방안을 함께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앞으로도 총 2조8천8백억원에 달하는 공기업 주식 매각계획을 갖고있어 「공급에 버금가는 수요 창출」이라는 논리에 따른다면 주식시장을 안정화시킬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이 지속적으로 대기하고 있다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다.
증권 전문가들은 『공기업주식 매각을 통해 예산을 확보할 수 밖에 없는 정부의 입장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힘없는 소액투자자들의 주머니돈을 정부 예산에 충당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비난하고 있다.
증권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최근 2년간 국내 주식시장이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원인은 국내 경기의 불황과 대기업의 연쇄 부도사태 및 돌발적인 정치적 변수 등에도 있지만 정부의 입장에만 충실할 뿐 투자자의 입장은 고려하지 못하는 주식시장 관련정책이 더 큰 원인이라고 질타하고 있다.
짓밟힌 개미군단과 제 기능을 상실한 기관투자가, 한국증시를 외면하는 외국인투자가 등을 다독거려 「위기에 선 증시」를 회생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관된 정부의 증시정책 시행이 시급하다.<김형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