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업도 부모 잘 만나야 하나' . 최근 경기 불황으로 심각한 취업난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일부 대기업 노조에서 '고용세습' 까지 요구하고 나서 논란을 빚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졸업생이 심각한 표정으로 취업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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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代 이은 채용이라니…" 재계 비상
■ 중노위 "고용세습도 노사교섭 대상" 다른 대기업 노조도 요구 잇따를 가능성커노동 유연성 저해·기업 경영부담등 불가피구직자 취업기회 제한…평등권 침해 우려도
이진우 기자 rain@sed.co.kr
이병관 기자 comeon@sed.co.kr
'취업도 부모 잘 만나야 하나' . 최근 경기 불황으로 심각한 취업난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일부 대기업 노조에서 '고용세습' 까지 요구하고 나서 논란을 빚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졸업생이 심각한 표정으로 취업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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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세습'도 노사교섭 대상
“이젠 퇴직직원 자녀들의 우선채용 요구까지 받아들여야 합니까.”(A대기업 인사담당 임원)
“가뜩이나 일자리 찾기도 어려운데 대기업 다니는 부모를 만나면 취직도 더 잘된다니 말이나 됩니까.”(20대의 한 구직자)
중앙노동위위원회가 24일 SK㈜ 노사에 대해 “근로자 자녀에 대한 입사편의 제공을 논의하라”는 내용의 중재결정을 내림에 따라 재계가 초비상에 걸렸다.
이번 중재안의 직접 당사자인 SK㈜ 노사가 이를 수용할 것인지 여부에 관계없이 현대차, 기아차, 현대중공업 등 다른 대기업 노조들이 중앙노동위의 이번 중재안을 토대로 퇴직자 자녀에 대한 입사편의 제공 등 사실상의 ‘고용세습’을 요구하는 사례가 잇따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계는 이 경우 기존 채용관행의 변화는 물론 향후 노사교섭에도 악재로 작용,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가 어려워지는 등 큰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란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번 중재 결정은 아울러 일반 구직자의 취업기회를 사실상 제한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인 ‘평등권’을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소지가 커 사회적으로도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재계 “퇴직자 자녀까지 챙겨야 하나”= 중노위의 이번 결정은 앞으로 다른 대기업 사업장 노조들이 임단협 등을 통해 ‘퇴직자 자녀의 우선 채용 명문화’ 등 비슷한 요구를 해 올 경우 사측이 사전에 거부할 명분이 없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논란이 예상된다.
매년 고임금 등을 요구하며 사측을 압박하고 있는 상당수 노조들이 ‘대(代)를 이은 고용’의 확보라는 호기(?)를 놓칠 리 없기 때문이다. 재계 안팎에서는 노조측이 설사 이를 관철시키지 않더라도 사전에 인력 구조조정이나 다른 단협 사안과 연계시켜 사측을 압박하는 ‘카드’로 들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보고 있다. 결과적으로 노조가 기업의 핵심 경영권에 해당하는 채용문제에까지 관여할 수 있는 ‘명분’ 내지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과거 일부 대기업들이 명예퇴직 등을 활성화 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이를 논의하거나 수용한 적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만일 퇴직자 자녀에 대한 입사 편의제공 등이 관행적으로 명문화 될 경우 경영에 큰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총 관계자도 “결과적으로 퇴직자 자녀에 대한 입사편의 제공은 노조의 힘이 막강하고 상대적으로 근무여건이 좋은 대기업들이 중심이 될 것”이라며 “이 경우 다른 중소 또는 영세 사업장 근로자들이 상대적으로 커다란 박탈감을 느끼는 등 사업장간 양극화도 더 심화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평등권 침해’논란…구직자 반발 거셀 듯= 이번 결정은 기업 경영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만만치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취업난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기업의 고용세습이 현실화 될 경우 일반 구직자들의 취업기회를 사실상 제한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구직자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부모 잘 만나면 취업도 더 쉬워지는 것 아니냐”, “영세사업장에 근무하는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등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실제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고용세습’은 대기업 노조의 지나친 이기주의라는 지적과 함께 결과적으로 일반 취업 희망자들의 기회를 박탈하면서 인권침해의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기업이 퇴직자 자녀에게 어떤 식으로든 메리트를 줄 경우 해당기업에 입사하려는 다른 지원자는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 밖에 없다”며 “대기업 노조의 지나친 욕심에 다수의 일반 구직자들이 희생되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실제로 이로 인해 피해를 입는 구체적인 사례 등이 나타날 경우 법적 소송 등 분쟁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 "노사 자율결정 사항" "위헌 소지"
법조계도 찬반 팽팽
중노위의 이번 조건부 '고용세습' 논의 결정 중재안을 두고 법률 전문가 집단에서도 찬반 양론이 엇갈리고 있다. 고용세습제가 노사 자율 결정 사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주장과 헌법상 국민의 평등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시각이 맞서고 있는 것.
김남준 노동 전문 변호사는 "조기 퇴직자 자녀에게 해당 기업 고용시 우선권을 부여하는 것은 노사 양자간의 합의 범위에 포함될 수 있다"며 "헌법상 평등권 침해 소지는 적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고용세습제 논의는) 기업과 노조가 법률적 테두리에서 논의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불특정 다수의 평등권의 침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중노위 결정 자체가 위헌 소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법조계의 또 다른 모 변호사는 "이번 중노위 결정으로 고용세습제를 노사가 단협에서 논의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며 "조기 퇴직자의 자녀가 아닌 불특정 다수에게 직업 선택시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위헌 소지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노위가 고용세습제라는 뜨거운 감자를 건드려 불필요한 노사 갈등을 야기할까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입력시간 : 2006/08/25 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