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동부의 '실리콘 밸리' 리서치 트라이앵글 파크를 가다

세계 첨단기업 끌어들이는 '블랙홀'
137개기업 입주…州전체 R&D고용의 53% 차지
대학이 인력공급·기술개발등 기업의 동맥역할 맡아
완벽한 산학협동 클러스터에 공해업체는 철저 배제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 안에 자리잡은 제약회사 에리모스 연구원들이 한국, 중국, 대만 등 아시아 기자들에게 산학협력 모델을 설명하고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중부에 위치한 리서치 트라이앵글 파크(Research Triangle Park)가 세계 굴지의 첨단기업을 끌어 들이는 ‘블랙홀’로 급부상하고 있다. ‘미 동부의 실리콘 밸리’로 불리는 이 곳은 오는 2020년까지 서부의 실리콘밸리를 제치고 세계 최고의 지역개발 센터로 우뚝 선다는 청사진을 마련해 놓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해외 기업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는 한국 정부가 리서치 트라이앵글 파크에서 배워야 할 점이 무엇인지 현장에서 짚어본다. 뉴욕 라구아디아 공항에서 1시간40분 가량 비행기를 타고 남쪽으로 향하면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중부지역 거점 공항인 더햄랄리 공항에 도착한다. 여기서 버스를 타고 5분 거리에 트라이앵글 파크 사무실이 있다. 트라이앵글 파크 홍보를 총괄하고 있는 테드 아버나시 부사장의 설명에 따르면 방문객들의 편의를 위해 공항과 가까운 거리에 사무실을 마련했다고 한다. 사무실에서 북쪽으로 향하면 더햄, 동쪽으로 가면 랄리, 서쪽으로 방향을 틀면 채프힐 지역이 나온다. 모두 차량으로 30분 이내 거리에 있을 정도로 가깝다. 옆 자리에 앉은 중국 신화통신 기자가 차창 밖을 바라보며 “경치에 취한다”고 말할 정도로 거리는 완연한 가을 빛이다. 하지만 대학과 기업들의 연구센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한여름을 방불케했다.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더햄(Durham)과 랄리(Raleigh), 채프힐(Chape Hill) 3개 지역을 연결해 조성된 곳이 리서치 트라이앵글 파크(RTP)다. RTP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대학과 연구기관이다. 더햄에는 듀크대학, 랄리에는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 채프힐에는 노스캐롤라이나대학이 있고 이를 중심으로 2년제 단과대학과 정부의 연구기관들이 들어서 있다. RTP는 고급인력을 배출하는 대학을 정점으로 세계적인 기업들이 몰려들면서 형성된 산합협동 클러스트의 결정체인 셈이다. RTP는 전체 면적이 7,000에이커(1에이커는 1,224평)로 자동차로 이동하면 1시간 이내에 도달할 수 있을 정도로 교통이 편리하다. RTP 홍보기관인 RTP파트너십의 테드 아버나시 부사장은 “세계적인 첨단기업 137개가 입주해 있으며 노스캐롤라이나 주 전체 고용의 22%, 특히 R&D 분야 고용은 53%를 차지할 정도로 노스캐롤라이나 경제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지역 종업원의 50%가 다국적기업에서 근무할 정도로 세계적인 기업들의 진출이 두드러진다. IBM을 비롯해 러노보ㆍ소니에릭슨ㆍ버라이즌ㆍ노텔ㆍ시스코 등 첨단 정보통신(IT) 기업과 베이어ㆍ바이오젠ㆍ머크 등 굴지의 제약회사들이 이곳에 연구센터를 두고 있다. ◇RTP 어떻게 IT메카로 부상했나= 이 곳은 대학과 기업의 산학협동이 이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신생 벤처기업들에게 영양분을 제공하는 벤처캐피털이 활성화되어 있다. 대학들은 대학부지를 싼값에 기업들에게 임대하거나 연구시설을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측면지원하고 있다. 또 대학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특허를 기업들에 팔거나 양도해 기술개발을 지원하고 있고 교수진을 파견해 연구개발에 참여하도록 한다. 실제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의 센테니얼 캠퍼스를 돌아보면 에릭슨ㆍ레드햇ㆍABBㆍ글락소스미스클라크 등 대기업과 정부기관 연구센터가 대거 들어서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언뜻 보기에는 대학이 아니라 산업단지를 연상시킬 정도로 각국에서 모여든 기업들이 연구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한국기관들도 이 곳에 둥지를 틀고 있다. 센테니얼 캠퍼스 운영을 맡고 있는 데이비드 윈우드 이사는 “이 대학에서만 1,600명의 기업관계자들이 연구활동을 하고 있고,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은 61개 기업들과 파트너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며 “‘대학 없는 기업’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유기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해 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듀크대도 마찬가지다. 암ㆍ심장ㆍ신장 등의 분야에서 각각 10위 이내 대학에 들어갈 정도로 바이오와 의료분야가 강한 듀크대학은 트라이앵글 지역에 진출한 제약회사들에게 고급인력을 제공하는 동맥역할을 하고 있다. 2만3,000명의 학생수를 자랑하는 노스캐롤라이나대학에 비해서는 다소 작은 규모지만 매년 5,900명의 학사와 5,600명의 석사를 기업에 공급하고 있다. 연방정부는 3억5,000만달러의 자금을 지원하고 있고, 기업 등 비 정부기관은 1억5,000만달러의 자금을 대학에 지원하는 등 산학협동의 산실역할을 하고 있다. 듀크대의 제프리 몰터 메디컬센터 이사는 “우리는 싱가포르국립대학과 석사과정 교환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면서 “한국도 의료시장을 개방하고 있는 만큼 한국 기업이나 대학과의 협력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듀크대는 현재 기술이전 등을 통해 16개 기업들과 협력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앞으로 해외 병원과의 교류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조직화된 클러스트 구축= 담배농사가 중심이었던 트라이앵글 파크 지역이 첨단산업의 메카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은 체계적인 관리와 운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기업유치와 선별을 맡고 있는 RTP 파운데이션이 공해발생 기업들은 철저하게 배제하면서 첨단 이미지에 맞는 기업들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트라이앵글 지역을 돌아다녀도 굴뚝에서 연기 나는 공장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기업유치가 일차적인 목표지만 지역사회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다는 철학을 지키고 있다. RTP파운데이션은 기업유치를 통해 마련한 자금을 기업 종업원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주거공간과 상업시설, 편의시설 등에 재투자한다. 실제 많은 기업들이 트라이앵클 파크를 찾는 것은 주거비용이 다른 주에 비해 저렴한데다 주거환경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중국 렌샹그룹이 IBM의 PC부문을 인수해 설립한 러노보가 연구센터를 다른 주로 이전하지 않고 트라이앵글 지역에 남겨두기로 한 것도 조직화된 클러스트 문화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러노브의 빌 오웬스 부사장은 “우리는 5년 이내에 최고의 PC메이커로 부상하고 3년 이내에 이익을 2배로 늘린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트라이앵글 지역에 첨단기업 클러스트가 구축되어 있기 때문에 훨씬 유리하다”고 말했다. 결국 RTP 지역이 세계 첨단기업을 끌어들이는 블랙홀로 부상한 것은 ▦기업과 대학의 유기적인 결합 ▦조직적인 클러스트 구축 ▦풍부한 고급인력과 벤처지원 자금 등이 종합적으로 마련되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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