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불안 지속에 투자 몸사리기
>>관련기사
금리와 주가가 연일 동반 하락하고 있다.
금리가 떨어지면 주가가 오른다는 교과서(투자론)과는 딴 판이다. 왜 그럴까. 경기침체와 신용경색, 시중자금의 단기부동화, 불확실한 경기전망이 복합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식시장 안에서만 보면 금융장세와 역실적장세가 혼합된 국면이 금리와 주가를 같이 움직이게 하고 있다. 금융장세와 역실적장세의 공통점은 경기침체국면. 경기침체기에는 '주가와 금리는 서로 상반되게 흐른다'는 교과서가 통하지 않는다.
금리는 지난 2월 이후 최저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지표금리인 3년만기 국고채의 수익률이 5.57%로 주저 앉았고 3년만기 회사채 금리도 연일 하락세를 거듭해 6.88%까지 내려오고 있다.
반면 주식시장은 계속되는 금리하락에도 불구하고 5월 이후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면서 540포인트까지 내려와 있다. 박만순 미래에셋증권 이사는 "지난 98년 이후 전세계적으로 금리와 주가가 반대로 움직이지 않고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며 "당장 금리하락이 주가를 끌어올리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금리는 내리고 있지만 시중 자금은 주식시장으로 돌아오긴 커녕 경기회복이 더 늦춰지는 신호로 받아들여 보다 더 안정적인 투자처를 찾아 주식시장을 떠나고 있다.
◇주가는 패션, 복합된 불안감=주가는 유행을 탄다. 사람들의 기대심리가 모이고 모인 것이 주식시장이기 때문이다. '증시는 정치 경제 등 사회를 총체적으로 반영한다'는 것과 같은 얘기다.
무엇이 사람들의, 즉 시장참여자들의 유행을 금리인하의 약발이 들지 않게 하는 것일까.
돈을 주는 은행과 빌려쓰는 기업에 실제로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기업부문을 살펴보자. 금리인하는 기업에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당장 이자비용을 줄어든다. 새로운 수익 창출을 위해 설비투자를 늘릴 여력도 생긴다.
활발한 투자는 기업의 실적을 호전시키고 주가 상승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금리가 아무리 싸더라도 기업이 생각하는 기대수익률보다 높다면 절대로 돈을 갖다 쓰지 않는다. 아무도 경기 호전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금리가 내렸다고 선뜻 돈을 갖다 쓸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요즘에는 돈 쓰겠다는 기업도 많지 않지만 막상 대출하려해도 쉽지 않은게 현실이다. 은행 때문이다.
은행들은 요즘 몰려드는 예금 때문에 고민이다. 운용이 쉽지 않은 탓. 경기전망이 불투명하고 신용경색 현상도 남아 있어 대출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더욱이 신규예금의 대부분이 초단기성 예금이다. 예금자들은 예금자대로 경기를 불안하고 보고 자금을 언제라도 빼낼 수 있는 단기로 운용하기 때문이다.
반면 기업이 원하는 자금은 중장기대출이다. 은행 입장에서 단기예금을 중장기로 운용하는 데는 미스매칭(만기 불일치)라는 부담이 따른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겪었던 데에도 금융권의 외화조달과 대출의 미스매칭이 한몫했다.
은행과 기업의 사정이 이런데 금리가 내려도 효과가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다만 기업의 차입금 이자부담이 줄어들었을 정도다. 이 정도는 주가에 영향을 미칠만한 재료가 못된다.
◇주가, 금리, 경기의 3박자=금리하락이 주가상승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는 경기에 대한 부문을 제외할 때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경기국면을 고려해 금리와 주가의 관계를 본다면 금리하락이 주가상승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는 한계를 가진다.
경기국면별로 주가와 금리의 관계를 살펴보면 경기회복국면에서는 실물경기가 저점을 뚫고 올라가는 가운데 주가는 상승세를 보이는 반면 금리는 하락세를 나타낸다. 시중자금에 대한 수요보다는 공급이 훨씬 많아 전형적인 유동성 장세를 보여준다. 경기가 안좋은 가운데 금리정책으로 주가를 부양하려는 금융장세에서도 주가와 금리가 같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기업들의 실적이 좋지 않은 역실적 장세에서도 마찬가지다.
금융장세와 역실적장세의 혼합국면에서 금리인하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셈이다.
경기가 회복되며 활황을 맞게 되면 시중자금은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고 주식시장도 금리도 모두 상승세를 타게 된다. 이러한 상승세는 경기정점에 까지 이어지다 정점에 이르러 주가는 폭락, 금리는 급등하는 모습을 보인다.
◇저금리 기조는 장기적으론 호재=국내 경기는 수출이 줄어드는 가운데 재고증가세가 확대되는 전형적인 경기후퇴국면의 모습이다. 투자자들은 금융시장 불안이 이어지자 안전한 투자처를 찾아 돈을 이동시키고 있다. 주가와 금리도 동시에 떨어지고 있다. 금리와 주가의 하락추세는 하반기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금리하락이 당장 주식시장에 호재로 작용하지는 않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경기회복이 가시화되는 시점에서 저금리는 증시로의 자금유입과 기업의 재무구조 개선효과를 촉발시켜 시장의 안전고리가 될 전망이다.
이상재 현대증권 경제조사팀장은 "단기적으로 금리하락이 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진 않겠지만 중장기적으론 긍정적"이라며 "장단기금리차(스프레드)가 확대되는 등 경기회복에대한 신호가 촉발될 경우 증시로의 유동성유입과 함께 주가의 하방경직성을 강화시킬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최악의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은 금리인하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데도 추가 인하 등을 검토중이나 자칫 금융정책의 효용성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결과가 우려된다.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제로(Zero)금리 정책까지 사용했으나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더 이상 사용할 정책적 도구를 상실한 일본의 전철을 답습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 경우 주가도 장기 횡보하거나 하락할 것으로 우려된다.
김현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