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스웨덴 방서성폐기물 처분장
"협오시설"이 "주요 산업시설"로 변신
원자력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원자력을 발전에 쓰면 소중한 에너지원이지만 이 과정에서 방사성 폐기물이 필연적으로 남게 된다.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각종 방사성폐기물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떤 방법으로도 방사선의 양을 줄일 수 없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 소멸될 뿐이다. 이 기간동안 땅속 등 격리된 곳에서 안전하게 보관하는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도 원자력 발전이 도입된 지 20년이 넘었다. 그만큼 혜택을 봤다는 얘기다. 그러나 변변한 폐기물 처분장은 없다. 더 이상 처분장 건설을 늦출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원자력 발전소 부지안에 마련한 임시 보관장 마저 몇 년 후에는 모두 가득 차버리기 때문이다. 한국보다 먼저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 폐기물 영구처분장을 운영하고 있는 프랑스, 스웨덴의 시설을 둘러봤다.
◇프랑스 로브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파리. 금방이라도 빗방울을 쏟아낼 것 같은 칙칙한 하늘을 원망하며 버스에 올랐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의 규칙적인 요동에 슬며시 잠에 빠져들었다.
문득 꿈에서 인 듯한 전원풍경을 보고 넋이 나갔나 싶더니 프랑스의 실제 경관이란 사실을 깨닫는 순간, 잠이 확 달아났다.
그리고는 한참. 버스로 3시간을 달렸다. 낙엽이 수북하지만 무섭도록 검은 숲. 오솔길을 굽이굽이 돌았다. 그리고 도착한 곳이 로브 방사선폐기물 처분장. 숲의 바다에 외롭게 떠있는 섬처럼 로브처분장은 외부와 격리된 채 자리잡고 있다.
이 곳 처분장은 지난 92년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69년부터 가동해온 첫번째 영구저장시설인 라망쉬 처분장이 폐기물로 꽉 차, 폐쇄 되면서부터다. 프랑스의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은 안드라(ANDRA)라는 기관에서 운영한다. 안드라는 보건ㆍ산업ㆍ환경ㆍ과학기술 부에서 공동으로 설립했다.
로브 처분장의 안내를 맡은 자크 탐볼리니씨는 "총 건설비가 120억 프랑이 들었고 부지 면적은 95헥타르"라고 소개했다. 원화로 환산하면 1조8,000억원에 달하는 큰 돈이 투자된 것. 처분용량은 100만 입방미터로 200리터 용량의 드럼, 500만개를 처리할 수 있다. 이 정도면 프랑스에서 발생하는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50년 분에 해당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10%정도가 채워졌다.
로브 처분장에서는 중ㆍ저준위 폐기물을 처리한다. 이들 폐기물을 드럼에 담아 이곳으로 들여온 뒤, 프레스로 압축해 부피를 줄인 다음 콘크리트로 밀봉해 차곡차곡 쌓아 버린다.
로브처분장은 기대했던 것 만큼 첨단시설로 보이거나 거대하지도 않았다. 아파트 공사장과 흡사했다. 뒤쪽에는 콘크리트 구조물과 가끔씩 다니는 트럭, 앞쪽에는 타워크레인을 동원해 콘크리트 방(Cell)을 만드는 인부들이 몇 명 눈에 띌 뿐이다.
자크 탐볼리니씨는 "방사성 폐기물을 넣어 밀봉한 원통모양의 콘크리트 덩이를 차곡 차곡 쌓은 뒤, 다시 콘크리트를 부어 거대한 콘크리트 덩이로 만드는 게 처분과정의 전부"라고 설명한다.
콘크리트 덩이를 쌓는 곳은 거대한 콘크리트 상자처럼 생겼으며 이를 셀이라고 부른다.
높이는 8미터, 가로ㆍ세로길이는 각각 24미터, 21미터다. 1년에 약 7개의 콘크리트 상자가 방사성 쓰레기로 채워진다. 이 셀 아래에는 침출수를 모으는 시설과, 방사선 측정장비 등이 갖춰진 공동구가 있다.
한참 크레인을 이용해 폐기물 드럼을 옮기고 있는 한 콘크리트 셀 위에 올랐다. 폐기물 드럼이 빼곡하게 쌓여 있을 뿐,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탐볼리니씨는 "폐기장이 모두 차면 흙으로 콘크리트 덩어리를 덮는다"고 설명했다. 이후 몇 백년간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게 된다.
프랑스의 원자력발전소는 모두 56기. 전체 전력의 80%이상을 원자력에서 얻는다. 프랑스는 중ㆍ저준위 폐기물을 버리는 로브처분장과, 원자로에서 사용하고 남은 사용후핵연료를 다시 쓸 수 있도록 가공하는 코제마 재처리공장이 있다.
프랑스는 로브처분장을 건설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부지 선정기간 언론브리핑만 102회, 개인접촉은 428회, 정보교환 미팅은 118번이나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지역주민의 동의를 얻어냈다. 로브처분장은 1년에 1만7,000번의 각종 환경영향 평가를 실시하고 이를 공개, 인근 주민은 물론 국민의 신뢰를 쌓고 있다.
◇스웨덴 포스마크
노벨상의 나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고속도로를 따라 침엽수림을 가르며 2시간 가량 달리면 포스마크라는 조용한 바닷가에 닿는다. 이곳이 포스마크.
포스마크에는 3기의 원자력발전소와 바다 속에 동굴을 뚫어 만든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사용후 핵연료 중간저장시설(크랩ㆍCLAB)이 있다.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운영하는 기구는 SFR. 오스카함 심페발프 처분소장은 "발틱해의 단단한 암반을 ?고 해저 60미터에 폐기물을 보관한다"고 소개했다. 육지에 천층처분(땅을 약간 파고 폐기물을 저장)하는 프랑스와는 달리, 스웨덴은 단단한 암반과 세계 최고의 굴착기술을 이용한 것이다.
그는 이어 동굴은 2개로 하나는 폐기물 운반용, 나머지는 동굴 처분장 확장공사용이라며 현재 4개의 터널방과 1개의 사일로에 폐기물을 저장한다고 설명했다.
동굴입구에서 처분시설까지는 약 1킬로미터. 버스가 들어갈 만큼 동굴은 컸다. 어두컴컴한 동굴은 별도로 마감처리를 하지 않아 음산하기까지 했다.
터널방은 길이가 165미터 정도로 콘크리트로 밀봉한 저준위 방사성 폐기물덩어리를 차곡차곡 쌓아 두는 곳이다. 포스마크에서도 모양은 다르지만 프랑스 로브처럼 방사성 폐기물을 압축, 콘크리트 덩어리로 만든다. 또 터널방이 가득차면 또 다시 콘크리트를 부어, 하나의 큰 덩어리로 만든 뒤 방을 폐쇄한다.
거대한 사일로는 높이가 50미터, 직경은 25미터다. 여기에는 조금 방사선이 센 중준위폐기물을 처리한다. 심페발프 소장은 "사일로가 다 차면 콘크리트를 채운 다음 벤토나이트 흙으로 밖을 채운 뒤 폐쇄한다"고 설명했다. 벤토나이트 흙은 지하수가 스며드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포스마크 처분장을 건설하는 데는 약 810억원이 투자됐다. 연간 유지비는 28억원정도.
88년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포스마크에서 일하는 직원은 고작 15명.
처분용량은 6만 입방미터로 현재 약 2만6,000 입방미터가 채워졌다. 처분장이 어느 정도 차면 터널 확장공사에 들어갈 계획이다.
심페발프 소장은 "매년 2만명 이상의 시민이 방문한다"며 "이를 통해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국의 방사성 폐기물처분장 건설에 대해 조언을 부탁했더니 심페발프 소장은 "공개하라. 정직해라. 그리고 정확한 정보를 주라"며 짧은 말속에 그의 경험을 담아냈다.
겨울 스웨덴의 해는 짧다. 오후 2시가 조금 넘자 어둠이 슬며시 내려왔다. 포스마크처분장을 뒤로하고 인구 2만1,900명의 웁살라 카운티 청사에 들렀다.
이곳의 쿠르트 안게우스 부군수는 의미 있는 말을 했다. "처분장에서 직접 받는 지원금은 한푼도 없다. 그러나 포스마크 원전과 처분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대부분이 웁살라 주민이고 세금을 낸다. 포스마크 시설은 웁살라의 중요한 산업시설이다."
/로브(프랑스)ㆍ포스마크(스웨덴)=문병도기자 do@sed.co.kr입력시간 2000/12/01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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