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석유놓고 총성없는 전쟁, 美 “모든계약 없던걸로”

미ㆍ영 연합군의 공격에 의해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붕괴되고 전쟁이 마무리단계에 들어갔지만, 이라크에 새로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바로 석유 전쟁이다. 미국과 영국은 승전국의 입장에서 이라크 땅에 묻힌 석유를 증산해서 이라크 국민에게 빵을 주고 포화로 무너진 건물을 짓는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딕 체니 미 부통령은 연간 200억 달러의 이라크 재건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전쟁전에 하루 170만 배럴였던 원유 생산량을 연말까지 250만~300만 배럴로 두배 가까이 늘리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라크 원유 생산 규모가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에 의해 규제되고 있다는 점이다. UN은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90년 이래 이라크의 원유 수출을 제재했고, 96년에는 이라크 국민들의 식량 구입용에 한해 석유 수출을 인정했었다. 이 UN 규제가 아직 살아있고, UN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프랑스가 UN 규제를 이용해 자국 이익을 실현하려 하고 있다. 다급한 쪽은 이라크 전쟁을 반대해온 프랑스와 러시아다. UN의 이라크 석유수출규제는 5월 12일에 만료하고 그 이전에 안보리가 수정안을 내지 않으면 6월3일까지 자동연장된다. 그후에는 규제가 자동적으로 풀리고, 이라크는 증산이 가능해진다. 점령국인 미국은 후세인 정부가 체결한 일체의 계약을 무효화할 것을 밝혀 놓고 있다. 이에 대해 러시아ㆍ프랑스ㆍ독일등은 UN을 통한 원유 생산을 주장하고 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한두 나라가 다른 나라의 운명을 통제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UN을 통해 이라크의 정치, 경제, 인도주의적 재건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랑스와 독일 석유회사들은 90년 이후 미국 정부가 자국 석유회사의 이라크 진출을 금지하는 동안에 이라크에 많은 석유수출권을 확보해놓고 있었다. 러시아 외교관들도 UN의 틀에서 이뤄진 계약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는 또 자국 석유회사 루크오일의 석유개발권을 유지하도록 압력을 넣어야 하는 입장이다. 루크오일측은 97년에 후세인 정부와 이라크 최대 유전인 서부 쿠르나 유전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후세인 정권은 러시아로 하여금 UN 제재를 풀어주는 조건으로 유전 개발권을 넘겼으나, 루크오일측은 미국이 전쟁을 준비할 때 후세인 이후 정부에서도 권리를 인정해줄 것을 요청했고, 이에 화가 난 후세인 정부가 계약을 취소했었다. 루크오일은 “우리 이외에 아무도 쿠르나 유전에 손을 댈수 없다”며, 미국이 계약을 무효화하면 국제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아울러 후세인 정권이 장악했던 이라크 국영석유회사를 민영화하고, 이에 해외 석유회사의 참여를 허용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과도 정부 또는 차기 정부가 이 민영화를 담당할 예정인데, 미국 석유회사들이 대거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라크의 원유 매장량은 1,120억 배럴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하고, 90년 쿠웨이트 침공 이전에 연간 하루에 350만 배럴을 생산했었다. 따라서 미국과 영국은 반전론자들로부터 이라크 석유를 탐내서 전쟁을 했다는 비난을 받았었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미국은 점령 기간동안 미국 회사에 많은 이익이 돌아가도록 하라는 압력이 있더라도 이라크 유전의 혜택이 이라크인들에게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이라크에서 석유를 수입했던 회사는 ▲미국의 세브론텍사코, 코노코필립스 ▲영국의 BP ▲프랑스의 토탈피나엘프 ▲이탈리아의 ENI등이다. <뉴욕=김인영특파원 inkim@sed.co.kr>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