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장의 환상

올들어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지고 경제불안감이 확산되자 경기회복이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떠 올랐다. 부동산투기를 부추킨다는 비난여론에도 불구하고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린데 이어 정부는 4조원규모의 추경편성과 서민생활 안정대책을 마련하는 등 경기부양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양적 성장을 최우선으로 삼던 개발연대가 끝났다지만 GDP는 여전히 `경제지표의 왕`이라는 사실을 절감케 된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경제성장률이 8%가 넘는데도 `경제위기`니 `경제난국`이니 떠들썩 했을 정도로 성장에 관한 한 개발연대의 눈높이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우리 정서에 비추어 성장률이 3%밑으로 떨어지는 상황에서 위기감을 느끼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다. 우리경제가 장기불황에 빠졌다는 경고도 있다.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월드컵 4강 진출을 계기로 내친김에 경제4강을 외치던 우리경제가 불과 1년도 안돼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권교체에 따른 정책불안등 상황론을 펴는 사람들도 있고 노사불안, 부동산투기바람, 카드사부실과 SKG사태등으로 인한 금융경색등 구조적인 문제에서 원인을 찾는 전문가들도 있다. 그러나 최대 불안요인으로 지적됐던 이라크전이 조기에 종결되고 북한리스크가 한미공조의 틀안으로 들어왔는데도 경제가 비틀거리는 근본적인 원인은 역시 우리경제 내부의 구조적인 취약성에 있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단순화하면 수출과 국내소비 그리고 기업들의 투자에 의해 경제성장은 결정된다. 여기서 수출이 지난 11개월간 두자릿수 증가를 지속하고 있고 기업들의 투자증가율에도 큰 변화가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들어 겪고 있는 경기침체는 거의 전적으로 국내소비 위축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러나 소비위축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가계 부채가 위험수위에 차오르고 신용카드 연체자가 300만명을 넘어서는 신용대란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소비가 꺾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돌이켜보면 막대한 공적자금, 부동산투기를 부추킨 은행의 가계대출 경쟁, 그리고 마구잡이로 발급한 신용카드등으로 능력이상의 과소비에 의해 경기가 지탱돼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채가 무한정 늘어날수 없다는 점에서 소비위축은 당연한 결과인 셈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신용경색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는 카드사 부실의 경우 과거 외환위기를 촉발한 주범으로 지목되는 종금사의 선례와 닮은 꼴이라는 점이다. 과거 종금사들은 단기 외채를 끌어다 장기 돈놀이를 하다가 단기외채의 상환연장이 안돼 외환위기에 불을 댕겼다. 자기자본 규제가 없는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 능력이상으로 차입금을 늘리고 마구잡이로 신용카드를 발급하다 부실의 수렁에 빠져 금융불안을 진원지가 됐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도 학습효과가 없는 것이 우리사회의 문제라는 지적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세계 모든 나라들이 경제가 쑥쑥 성장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건실한 성장을 가로막는 구조적 문제와 행태를 놔둔채 임기응변식 경기부양은 경제를 왜곡시키고 훗날 더 큰 후유증을 남기게 된다. 경제성장률이 조금만 떨어져도 비명을 지를 정도로 경제성장이 중요하다면 과연 과실을 누릴수 있을 정도의 노력을 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경쟁력 강화와 경제사회전반의 효율성을 높이는 고통을 감당하지 않고 성장의 과실만 기대하는 것은 누워서 감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외환위기이후 줄곧 개혁과 구조조정이 강조돼 왔지만 실질적인 구조조정 기간이래야 1년남짓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경제체질을 강화하지 않고 돈을 풀어 흥청망청하는 식의 경기는 언젠가 꺼지는 거품만 키울 뿐이다. 우리는 어쩌면 노력한 것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는지 모른다. <논설위원(經營博) srpar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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