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힘’

고등학교 영어참고서에서 `분사(分詞)편`을 들추다보면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문장이 있다. 바로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A rolling stone gathers no moss)`는 속담이다. 우리는 이 속담의 뜻을 `부단히 노력하고 정진해야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고대에는 그 의미가 반대였다고 한다. 옛날에는 `한 우물을 파지 않고 이 일 저 일을 건드리다 보면 성공할 수 없다`는 뜻으로 자주 사용된 것으로 전해진다. 같은 말이라도 오랜 시간이 흐르면 이 속담처럼 그 의미가 바뀌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흔히 이런 현상을 `언어의 역사성`이라고 한다. 문화, 행동양식 등이 변하면서 새로운 단어가 탄생하기도 하고, 기존 단어가 없어지기도 한다. 또 같은 말이라도 사회의 추세를 반영해 새로운 의미를 담기도 한다. 따라서 현대인이 타임머신을 타고 로마시대로 날아가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말을 하면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뜻을 상대방이 오해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말의 의미가 바뀌는 일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하지만 같은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서로 상대방의 말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보다 잘 굴러갈 수 있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특히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안에 대해 무수한 말이 쏟아질 경우 진의를 파악하는데 엄청난 노력을 들여야 한다. 대표적인 예가 노동정책에 대한 대통령의 말이다. 노동문제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말은 친노(親勞)와 반노(反勞)의 경계선을 거침없이 넘나든다. 우선 친노(親勞)로 해석되는 말을 살펴보자. `법과 원칙대로 하면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조건이 많이 있다. (2월13일 한국노총 간담회)`, `파업에 대한 공권력 투입은 국민들의 신체, 재산, 생명이 급박한 위기를 당할 때 필요하다. 전쟁같은 혼란이 아닌 이상 불편을 어느 정도 감수할 수 있다.(6월23일 근로감독관 간담회)`. 반면 반노(反勞)로 풀이될 수 있는 발언도 많다. `최근 일부 노동운동은 도덕성과 책임을 잃어가고 있다(6월19일 청와대 수석ㆍ보좌관회의)`, `이제는 노조의 특혜를 해소해야 한다(6월27일 스티브 포브스회장 접견)`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따라서 생각이 달라지면 말도 바뀔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사람이 하는 말이 자주 달라지면 신뢰는 무너지고 만다. 특히 그것이 대통령 같은 공인의 말이라면 사회적 혼란은 확대될 수 밖에 없다. 자신의 말이 어떤 뜻으로 해석되고, 어떤 파장을 일으킬 것인지를 심사숙고하는 노력을 간절히 기대해 본다. <정문재(경제부 차장) timothy@sed.co.kr>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