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규 검찰총장 취임 이후 조직의 안정을 찾은 검찰이 기세를 몰아 각종 비리의혹 수사에 거침이 없다. 지난 3개월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활기를 되찾은 모습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박연차 게이트 수사과정에서 피의사실 공표로 비난여론을 받은 탓인지 관행처럼 해오던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한 브리핑을 일체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브리핑 중단은 논란이 없지 않지만 논외로 하고 검찰의 첫 수사타깃에 기업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는 사실에 재계는 일종의 데자뷔를 겪고 있다.
검찰총장이 나서 "기업수사가 아니라 비리수사"라고 진화했지만 기업들은 전 정권과 유착한 기업에 대한 손봐주기 수사라거나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기업이 없기 때문에 성과에 목말라 하는 검찰이 '참 쉬운' 대상으로 기업을 고른 게 아니냐는 의심을 과거 경험에서 직감하는 듯하다.
검찰출신의 한 변호사는 "정치권 수사는 크고 작은 외압들이 많아 수사가 힘들지만, 기업 수사야 여론의 관심도 크고 마음먹기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요즘에는 검찰도 기업 수사 노하우가 쌓여 관련 회계수치 몇 가지만 확인하고도 의혹을 대강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기업은 '고양이 앞의 쥐'나 다름없다.
검찰의 기업비리 수사에 딴죽을 걸 생각은 없다. 다만 수사에도 타이밍이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전제 하에 기업보다 더 시급한 수사 수요는 없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덫에서 막 벗어나는 시점에, 그것도 경기침체 탈출의 엔진 역할을 해야 할 기업들을 잇따라 수사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타이밍상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비리기업 몇 군데를 수사한다고 경영위축으로 이어지겠냐고 말할 수 있지만 지금은 청와대에서도 '워룸'을 운영할 정도로 촌각을 다투는 비상시기다. 기업들이 한번 수사를 받고 나면 컨트롤타워는 이 일에 수개월 이상을 매달려야 하기 때문에 심리적 위축은 물론 전략부재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기업수사로 논란을 빚을 바에야, 차라리 전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장애인이나 노인, 소외계층의 복지예산을 횡령한 공무원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나서는 것이 현재 타이밍상 더 옳을 것 같다. 즉, 수사 테마를 정해 전국 검사들이 총동원돼 수사에 매달리는 이른바 '원포인트식 수사'도 한 방법이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고검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수사가) 기업이 아니라 국민들의 삶을 질을 높이기 위해 환경사범이나 복지예산 횡령 등의 특정 수사 테마를 정해 전국적으로 수사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국민들이 박수칠 만한 수사 테마를 만들어 기획수사에 나서는 것도 '변모'하는 검찰을 보여주는 좋은 계기가 될 듯싶다. 기업 말고도 국민들이 원하는 수사 테마는 널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