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평구 역촌동에서 20여년째 김치를 담가 팔고 있는 유예순씨. 유씨는 원래 야채상점을 운영하다, 심심풀이로 담가 준 김치가 입소문이 나면서 김치가게를 차렸다. 유씨가 담그는 김치의 양은 하루 평균 배추 150포기와 무 30단 정도다. /이호재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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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 역촌동에는 20여년 전통의 유명한 김치 가게가 있다.
처음 가게 문을 열었을 때는 상호가 충남상회였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유예순 김치’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기자가 이 집을 찾은 날 유예순(61ㆍ사진)할머니는 ‘취재를 하러 왔다’는 기자를 보고도 시큰둥 했다. 하지만 물이 흥건한 가게 바닥 한 구석의 테이블에 쪼그리고 앉아 이것저것 물어보자, 일 손을 쉬지 않으면서도 흥이 나서 대답을 했다.
-언제부터 김치장사를 하셨어요.
“갈현동에서 32년 전에 야채장사를 하다가, 배추 사가는 사람들이 김치 담는 법을 물어보길래 고추가루만 가져오면 내가 담아줬어요. 그런데 김치 맛을 본 사람들이 줄을 서드라고. 그래서 20년 전부터 아예 김치장사로 돌아섰지.”
-하루에 얼마나 담그세요.
“주문량에 따라 다르지만 하루에 배추 150~200포기, 무우 5개짜리 30단 정도씩 담아. 김장철에는 배추김치, 총각김치, 파김치 등 서너가지만 하고, 여름에는 열댓 가지 정도 담아.”
-어쩌다 이렇게 유명해지셨어요.
“입소문이 나니까 알고들 와요. 난 하나부터 열까지 국산재료만 쓰고 있어.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 김치가 사라질까봐 발발 떠는 게 나야. 또 손님들이 짜게 해달라면 짜게 해주고, 싱겁게 해달라면 싱겁게 해주고, 나는 입맛대로, 주문대로 해줘요.”
-팔도 김치를 다 담글 줄 아세요.
“그럼. 손님이 고향만 얘기하면 입 맛 대로 해줘. 서울사람은 멸치젓국 싫어하고, 전라도는 간간하게, 경상도는 무채를 싫어해서 죽을 넣고 진하고 짜게 만들어.”
-김치 잘 담는 비결이 뭐예요.
“비결은 우리식구 먹는다고 생각하고 정성껏 만드는 거지 뭐. 가장 중요한 것은 간을 맞추는 거야. 재료도 중요하지만 간이 제일 중요하고, 그런데 마음자세도 중요한 것 같아. 그날 마음이 차분하고 기분이 좋으면 김치가 맛있고, 괜히 들떠서 덤벙거리면 김치가 맛이 없더라고. 어떤 사람들은 음식 만드는 비법이 있다고 쉬쉬하는데 난 그런거 없어. 그래서 누가 물어보면 다 가르쳐 줘. 일본 사람들만 빼고 다 가르쳐 줘.”
-돈 많이 버셨겠네요.
“많이 못 벌었어. 배추값이 비싼 여름에는 죄들 우리집으로 사먹으러 와. 그러니 여름에는 손해만 보지. 혼자 사는 노인들이 1,000원 어치씩 사러 오면 돈 못 받겠어. 그러면 공짜로 주고 그래.”
김치 맛이 궁금해 총각김치 2㎏를 1만원에 사서 싸들고 나오는 기자의 뒤통수에 대고 할머니가 말했다. “오늘 먹지 말고 푹 익혀서 먹어. 그래야 맛이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