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은 유난히도 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또 장마가 끝난 후에도 지루할 만큼 빗줄기를 뿌려대곤 했다. 그러나 계절의 변화는 거역할 수 없나 보다.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찬 기운이 감돈다.
여름휴가는 꼼짝없이 집안에 틀어박혀 지냈다. 여느 해 같았으면 가족들과 피서를 잠시 다녀온 후 부리나케 배낭을 둘러메고 혼자 산으로 떠났을 텐데 대지를 녹여버릴 듯한 뜨거운 열기와 간간이 뿌려대는 굵은 빗줄기에 주눅이 들어 산에 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지난주 말 모처럼 용기를 내어 평소 다니던 근교 산을 찾았다.
아직도 한낮의 햇살은 따가웠다. 비가 온다거나 날씨가 덥다고 우리는 산을 찾지 않기도 하지만 산은 한결같이 우리를 반긴다. 산에서는 계절이 먼저 온다. 산에 오를 때마다 다음에 찾아올 계절을 먼저 알게 된다. 산 위에는 이미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다. 나뭇잎은 싱그러움이 조금씩 바래가고 풀벌레 소리도 힘을 잃어간다.
하늘 높이 날던 잠자리들도 어느새 정상 부근으로 내려와 있다. 늘 하던 버릇대로 정상에서 오랫동안 서성거린다. 배낭을 벗어 놓고 사방을 둘러본다. 그동안 무엇이 달라져 있을까. 왜 오랫동안 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것일까. 스스로 물어보아도 명쾌한 해답을 찾기 어렵다. 한 가지 분명한 느낌은 산은 인간과 달리 변함이 없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직원들과 함께 산을 찾는 기업이 늘고 있다. 산행은 직원들 간에 우의를 다지고 기업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역경을 헤쳐나갈 정신력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또 산행을 통해 자연을 느끼고 사랑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면 금상첨화다.
그러나 ‘도전’ 또는 ‘극복’과 같은 구호 아래 지나치게 목표 지향적인 산행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것은 산을 대상으로 보는 관념에서 머무르기 때문이다. 정상 정복을 지상 과제로 산행을 추구하다 보면 무리가 따른다. 산에 오르는 과정의 즐거움보다는 정상에 올랐다는 결과만을 중시할 가능성이 있다. 여럿이 산에 오를 때는 개개인의 체력이나 취향 등을 배려해야 하는데 직장 단위의 산행은 자칫 이점을 소홀히 해 큰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필자도 현재의 직장에 부임한 이래 직원들과 여러 차례에 걸쳐 산행을 해오고 있다.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는 극기훈련 수준의 강행군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산행 당일의 일기나 직원들의 건강 상태 등을 고려해서 적합한 산행이 되도록 노력한다. 무엇보다도 직원 개개인이 산행을 통해 즐거움을 느끼고 더 나아가 자연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