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황인선 정치부장
“분배에 중점을 두되 성장의 짐이 될 수 있는 분배정책은 추진하지 않을 것입니다.”
김효석(54) 민주당 제2정책조정위원장은 12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새 정부의 중점 경제정책 방향을 이같이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경제철학은 주주중심의 미국식 자본주의가 아닌 노조ㆍ채권자ㆍ주주 등을 포함한 이해관계자 중심의 자본주의”라며 “새 경제팀은 노 당선자의 경제관을 현장에 잘 접목하면서 경제를 안정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또 “한국에 대한 해외의 잘못된 인식을 그대로 방치하면 경제에 크나큰 위험이 올 수 있다”고 경고한 뒤 “국내 경제는 국내 경제대로 챙기고 대외경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핵심 경제브레인으로서 새 정부의 각종 경제개혁 프로그램 입법화의 창구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여 힘이 실리고 있는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들어봤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면 우리 경제생활이 어떻게 달라질 것으로 봅니까.
▲당선자가 가장 역점을 두는 부분이 중산층과 서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것입니다. 우선 금융권이 갑자기 가계대출을 줄여 신용불량자가 급증하고 있는데 이 과도기적 상태에서 신용불량자들이 연착륙을 할 수 있도록 도와드릴 것입니다. 또 장기임대ㆍ공공주택을 많이 지어 서민들이 싼 값에 집을 살 수 있고 근로자의 세부담도 덜어드릴 것입니다. 증권관련 집단소송제 도입을 통해 시장을 투명하게 만들고 공정한 시장경쟁을 할 수 있도록 여러 장치들을 마련할 겁니다. 이렇게 되면 소액투자자 권리가 한층 강화되고 중소기업이 일하기 편해지겠죠.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비율도 현재 48%인데 당선자 임기 동안 적어도 60%로 높아질 것입니다.
-새 정부가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경제과제가 무엇이죠.
▲그 동안 내수가 성장을 끌어왔는데 이제 한계에 왔습니다. 투자와 수출이 앞으로 성장을 이끌어 가야 합니다. 다행히 수출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투자부문으로 기업들이 활발하게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외환위기 이후에 우리나라 기업들이 굉장히 축소지향형으로 바뀌어 성장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이는 새로운 성장엔진을 만들어나가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게 급선무입니다. 근래 IT(정보기술)가 우리 경제의 중심산업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IT는 하드웨어 위주입니다. 소프트웨어가 굉장히 약한 게 문제입니다. 신수종(新樹種) 산업으로 BT(생명공학기술)를 얘기하지만 BT의 경우도 미국의 100분의 1밖에 안 됩니다. 신수종산업의 개발이 함께 나와야 합니다.
-노 당선자의 재벌개혁 프로그램중 상속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에 논란이 많습니다만.
▲이 제도는 세금 없는 부의 대물림이 없어야 한다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조세법률주의에 따라 위헌소지가 있다고 하지만 실질과세원칙에서 보면 반드시 위헌이 아니에요. 부자들이 존경받는 나라가 되려면 그들이 이 제도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높은 신분에 맞게 도덕적인 의무감을 가져야 한다는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차원에서 필요합니다. 사실 이 제도는 일반국민들과는 큰 관계가 없습니다. 재벌 총수나 관련된 문제로 그들을 설득, 조기에 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사외이사제 강화가 기업경영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그 구체적인 정책추진 방향을 소개해주십시오.
▲사외이사제의 경우 자산규모 2조원 이상인 상장ㆍ등록법인은 전체 이사회 구성원수의 절반을 사외이사로 채우도록 의무화돼 있습니다. 저는 사외이사 수를 과반수로 늘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명을 더 늘리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 정도는 돼야 사외이사들이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쳐 총수의 독단적인 경영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자산규모 2조원 이하 법인도 현행 전체 이사회 구성원 수의 4분의 1 또는 1명으로 돼 있는 사외이사 수를 2명으로 1명 늘려야 한다고 봅니다.
-노 당선자가 성장을 얘기하면서 성장의 견인차인 재벌기업에 개혁을 압박하는 것은 모순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는데요.
▲성장과 분배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둘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정책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어려운 사람에게 돈이 돌아가면 내수기반이 확대되는 것과 같은 논리입니다. 새 정부는 분배에 중점을 두되 성장의 짐이 될 수 있는 분배정책은 추진하지 않을 것입니다. 재벌개혁은 대기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벤처산업을 건전한 국가핵심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정책 개선방향은 무엇입니까.
▲벤처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합니다. 벤처기업 지원정책이 지금까지는 라이프사이클 전단계를 지원하는 것이었다면 앞으로는 라이프 사이클 단계별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창업단계에서는 기술을 지원하고 나머지 단계에서는 수요창출을 지원하는 것이죠. 또 지금까지 개별기업에 대한 지원을 했다면 앞으로는 생태계,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동안 정부가 나서서 자금지원을 해줬다면 앞으로는 민간이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정부의 벤처기업 인증도 시장인증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시장인증이란 벤처 캐피털 등이 인증하는 것을 말합니다. 민간에서 하면 도덕적 해이가 훨씬 적을 것입니다. 전문성을 가지고 있고 잘못 지원하게 되면 벤처 캐피털 자체에 손실을 입으니까 잘 들 해나갈 것입니다.
-노 당선자는 외국 투자자들에게 친노조, 반세계주의자로 비춰지는 면도 있는 것 같은데 이런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것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만.
▲우리는 그동안 국내 경제만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대외경제를 걱정해야 합니다. 한국에 대한 해외의 잘못된 인식을 그대로 방치하면 경제에 크나큰 위험이 올 수 있습니다. 당장 반도체ㆍ철강 등과 관련된 한ㆍ미 통상마찰이 걱정됩니다. 미국은 우리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대부분 미국에 있는 주요 신용평가기관들이 우리에게 불공정하고 불리한 평가를 내릴 수 있습니다. 우리 국익이 달려있는 문제입니다. 국내 경제는 국내 경제대로 챙기고 대외경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선자의 경제철학을 잘 아는 사람들이 미국을 방문해 부시 미국 대통령의 참모들이나 월스트리트 투자자들을 만나 당선자의 경제관을 적극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새 정부의 경제팀 진용은 어떤 인물로 짜여야 한다고 보십니까.
▲새 경제팀은 우선 당선자의 경제철학, 경제정책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노 당선자의 경제철학을 현장에 잘 접목하면서도 경제를 안정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노 당선자의 경제철학은 이해관계자 중심의 자본주의입니다. 지금까지 주주중심의 자본주의, 즉 미국식 자본주의와는 다릅니다. 이해관계자란 노조, 채권자, 주주 등을 포함한 말입니다. 최근 경제에서 심리가 중요합니다. 새로운 개혁을 추진할 때 국민들이 불안해 하면 투자가 안 이뤄집니다. 개혁의 청사진을 국민들에게 제시하고 재벌과 노조 등을 설득해야 합니다. 일방적으로 밀어 붙이는 것도 안 되고 옛날처럼 무조건 안정적으로 끌고 가는 것도 실패합니다.
■ 발자취
김효석 의원은 디지털시대를 이끌어갈 경제전문가로 꼽힌다.
광주일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민주당 김기재ㆍ강운태 의원 등과 행정고시 11회 동기로 국세청에 근무하다 국비유학생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아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내에 들어와 중앙대 경영대학장ㆍ정보통신대학원장,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 등을 지내면서 정보통신분야 전문가로 우뚝 섰다.
그가 정치권에 발탁된 배경은 참신성과 전문성. 2000년 16대 총선을 통해 전국 최고득표율로 국회에 진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는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ㆍ재정경제ㆍ예산결산특위 등 경제관련 상임위에서 단연 돋보인 의정활동을 펼쳐 주목을 받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으로 함께 활동한 한나라당 최병렬 의원은 “김효석 의원은 정치권에서 손꼽히는 정보통신 전문가로 송곳같이 날카로운 질문에 꼭 대안을 제시한다”며 “21세기를 이끌어갈 소중한 인재”라고 치켜세우기까지 했다.
그는 지난해 초 재경위로 상임위를 옮긴데 이어 당의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제2정책조정위원장으로 임명돼 명실상부한 경제전문가로 급부상했다. 특히 서민경제에 밝아 이동통신요금ㆍ전기료ㆍ농업 정책자금 인하, 농어민 유류세 감면 연장, 부동산투기 억제정책 등 다양한 서민정책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최근 민주당 제2정조위원장에 유임돼 새 정부의 경제정책을 이끌어갈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핵심 경제브레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정치적으로 어수선한 당의 분위기 속에서도 정치적으로 휩쓸리지 않고 민주당 선대위 제2정책위원장직을 맡아 노 당선자의 경제정책과 공약을 만들어냈다. TV토론회 등을 통해 노 당선자의 경제정책을 효율적으로 홍보하고 노 당선자의 경제이론을 뒷받침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 내가 본 김효석 의원 - 장흥순 벤처기업협회장
내가 김효석 의원을 처음 안 것은 그가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원장으로 재직할 때였다. 당시 나는 김 의원이 발휘하는 리더십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업계의 의견을 청취하면서 정책을 입안했고 실제 그것들이 업계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반영되는 모습을 보면서 현실을 직시하며 합리적으로 일을 풀어가는 분이라고 느꼈다.
서울상대 학생회장 출신으로서 행정고시에 합격해 관계에 몸담다가 유학길에 올라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경영정보학(MIS)을 전공했고 교수시절 활발한 연구활동과 업계에 대한 지속적인 자문활동 등을 통해 이론과 현실을 접목시켜 온 그의 이력을 알고 나니 그의 리더십은 오랜 기간에 걸쳐 철저히 준비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정치에 입문한 사실을 알고서는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한편으론 걱정이 앞섰다. 저 온화하고 깔끔한 분이 과연 험난한 정치풍파를 헤쳐나갈 수 있을까라고 우려하는 사람들은 나뿐만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관계렷逵瓮업계를 두루 거치면서 단련된 역량과 전문성, 그리고 리더십을 토대로 경쟁력 있는 `정치인 김효석`으로 변신에 성공했다.
현실에 기초한 실현가능하고 확고한 비전,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사안들을 꿰뚫어보는 혜안과 전문성, 깨끗하고 세련된 용모만큼이나 정연한 논리와 설득력, 상대방을 세심하게 배려해주는 감성, 누구라도 끌어안을 수 있는 친화력, 부지런한 학습을 통한 자기변신, 개혁을 추진하면서도 결코 무리수를 두지 않는 합리적 균형감각 등이 어우러져 정책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김 의원의 정책은 IT업계의 맥을 제대로 짚고 있었으며 방향도 분명하고 균형감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김 의원의 국회활동은 IT업계에 큰 힘이 되었다. 중소 벤처기업에 대한 각종 법률적ㆍ정책적 지원은 지금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 지금은 국회 재경위로 분야를 옮겼지만 김 의원에 거는 기대가 크다. 국회에 정보통신 전문가로 입문해서 두각을 나타낸 데 이어 이제는 경제전문가로 더욱 왕성한 의정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를 보면 정말 국회에 꼭 있어야 할 정치인이라고 생각된다.
<정리=구동본기자 dbkoo@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