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늦어지면 경제에 큰 짐"… '잠재부실' 제거나서

■ 20兆 규모 中企 대출보증 회수
국책보증기관 보증여력 축소도 대출회수 빌미 제공
"연말 다가오는데…" 기업들 자금대란 불안감 증폭



정부와 금융당국이 중소기업 구조조정에 가속을 붙이는 것은 구조조정이 지연될 경우 우리 경제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유동성 회수 이후 이어질 금리인상은 한계기업의 줄도산으로 이어지고 더디게 회복되고 있는 고용시장을 얼어붙게 할 수 있다는 지적도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게 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서비스업 선진화 등 정책적인 조율과 지원을 할 수 있을 때 선제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지는 편이 낫다"며 "한계 중소기업이 통제범위를 벗어날 경우의 충격은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대출만기 재연장 불가라는 카드를 꺼내든 금융당국 입장에서 구조조정이 결코 쉬운 패는 아니다. 자칫 12월 자금수요가 집중되는 시점에 중기대출 연장이 막히면서 기업자금시장 자체가 경색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미 중소기업들에는 연말 '자금 대란'의 불안감이 빠르게 증폭되고 있다. ◇비상조치 정상화는 구조조정 1단계=중소기업 구조조정의 1단계는 금융위기 이후 시행됐던 비상조치들의 정상화다. 정부는 금융위기 이후 ▦수출입은행ㆍ산업은행의 1년간 만기 연장 ▦은행권 대출에 대한 1년간 보증만기 연장 ▦신규보증 심사기준과 보증한도 완화 ▦보증비율 80~90%에서 100%로 확대 ▦패스트트랙(유동성 애로기업 특별지원) 프로그램 등으로 중소기업들의 유동성 부족을 지원했다. 하지만 정부는 나라살림이 빚더미에 올라 있는 상황에서 내년부터는 비상조치들을 다 거둬들일 방침이다. 이미 내년 예산안에서 추가경정예산에 반영됐던 중소기업 긴급경영안정자금도 1조5,000억원에서 3,000억원으로 줄였고 올해 신용보증기관에 출연한 2조7,000억원도 전액 삭감했다. 중소기업 지원예산 삭감이 구조조정의 가능성을 열었다면 은행의 중소기업대출 만기 재연장 불가 방침은 중소기업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임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시장논리에 따라 한계기업을 퇴출시키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의 한 고위관계자는 "더딘 구조조정은 결국 경제에 부담요인 될 것이 분명하다"며 "1년간의 지원은 중소기업의 옥석을 가릴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1ㆍ2차 신용위험평가를 거쳐 11월 말 여신규모 10억원 외감 및 30억원 이상 비외감 업체에 대해 3차 신용위험평가를 실시할 계획이다. 1ㆍ2차에서는 모두 287개 업체가 구조조정대상인 CㆍD등급으로 판정 받았다. ◇보증여력 소진 카운트다운=중소기업대출의 버팀목이었던 국책보증기관들의 보증여력 축소도 구조조정 속도를 빠르게 하고 있다. 대표적 국책보증기관인 신용보증기금의 9월 말 기준 일반보증잔액은 38조9,000억원으로 보증목표 39조4,000억원의 99%에 육박했다. 정부 정책에 맞춰 상반기 보증지원을 집중하며 보증여력이 소진된 것이다. 기술보증기금도 마찬가지다. 9월 현재 보증업체 수는 4만5,832개, 보증액은 17조1,695억원으로 올해 보증목표 17조1,000억원을 초과했다. 물론 보증기관들은 올해 연간 보증목표를 배정할 때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추가 한도를 받아놓았기 때문에 올해 말까지는 보증여력이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이도 정부의 한시적 지원정책 종료에 따라 올해 말이면 끝이다. ◇중기 연말 자금대란=전자부품사인 B사의 L사장은 한달 뒤로 다가온 50억원 규모의 만기도래일을 앞두고 밤잠을 설치고 있다. 금융위기 극복으로 기업 경기가 회복된다는 것은 남의 얘기일 뿐이다. L사장은 "지금까지는 간신히 회사가 굴러왔지만 출구전략과 중기 구조조정이 현실로 다가오는 상황에서 대출상환을 요구 받게 된다면 회사 존립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숨을 지었다. 사실 지표상으로 나타나는 중소기업의 자금사정은 크게 나쁘지 않다. 기은경제연구소가 4,000여개 중소기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9월 현재 중소기업 가운데 자금형편이 어렵다는 업체는 전체의 30%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하락해 2004년 9월 이후 자금사정이 가장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여기에 지표의 함정이 숨어 있다. 정부의 재정지출에 따라 중소기업의 자금사정이 양호하게 보일 뿐 실질적 영업을 통한 이익으로 자금사정이 개선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자금수요가 급증하는 12월에 들어서면 중소기업계 자금 대란이 현실로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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