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발목 잡으려다 오히려 제 발등 찍을 것이다. 정체성 논란은 결국 박근혜 대표에게 부메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최근 대여 공세수위를 높이고 있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 대해 4일 열린우리당의 한 재선의원은 이런 평가를 내놓았다. 비록 여당 의원의 얘기이긴 하지만 정가에서는 정체성 공방이 길어지면서 박 대표가 스스로 딜레마에 빠져들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당내에서 이재오 의원을 앞세운 비주류 및 개혁파의 반발이 만만하지 않은데다 정체성 공방에 묻혀 신행정수도 이전 등 각종 정책현안의 투쟁동력이 상실된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특히 야당이 민생경제를 외면한다는 비난마저 제기돼 이래저래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박 대표가 3일부터 의원들과 잇달아 모임을 갖고 활발한 의견 수습에 나선 것이나 정체성 수호 특별기구 설치 등 당 차원의 공동 대응을 추진하고 나선 것도 일단 이 같은 고민을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우선 박 대표가 정체성 문제를 끄집어내면서 당내 세력간에 미묘한 입장 차이가 드러나고 있다. 최근 한나라당내 비주류를 자처하면서 박근혜 대표 비판에 앞장서고 있는 이재오 의원이 4일 “박 대표가 대통령이자 독재자의 딸로서 유신독재의 한 가운데 있었던 만큼 그 시절의 과오에 대해 사과하고 자신의 노력으로 얻지 않은 정수장학회 이사장직은 내놓아야 한다는 얘기였지 무조건적인 ‘박근혜 불가론’은 아니다"고 해명했지만 당내 ‘반박 그룹’의 행보는 여전히 예사롭지가 않다. .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은 “한나라당의 뿌리는 가까이 보면 민정당이다. 지난 80년대의 광주 민주화운동 같은 껄끄러운 문제까지 따지면 나라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당의 입장을 고려해 개혁파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지만 새로운 당의 방향을 설정해야 할 시점에 이념 문제를 제기한 것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정체성 논란이 장기화되면서 신행정수도 이전 등 각종 정책현안이 묻혀버리는 점도 문제다. 이한구 정책위의장은 4일 오랫동안 예고했던 수도 이전 문제점에 대한 공개 질의서를 발표했지만 당 안팎의 분위기가 온통 정체성 문제에 매몰되면서 행정수도 문제는 곁가지로 새나갈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최근 당 지도부가 충청지역 당원과 모임을 갖고 ‘한나라당은 수도 이전 반대를 당론으로 채택한 적이 없다’고 밝힌 것도 당의 운신 폭을 제약하고 있다.
당 안팎에서는 박 대표가 이 같은 상황에서도 강공 드라이브를 선택한 이유는 차기 대권경쟁까지 염두에 둔 포석으로 보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어차피 둘러쓸 것이라면 ‘박정희 이미지’를 털어내기 보다는 나름대로 그 속에 감춰진 대중적 인기(?)를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박 대표의 외부자문그룹이 향후 그의 대선전략 차원에서 당내 장악력을 높이고 정국 주도권도 쥐기 위한 아이디어의 하나로 정체성 문제 제기를 건의했다는 소문이 여의도 정가에는 파다하다.
그럼에도 불구,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체성 논란’이 반드시 박 대표에게 유리한 국면이 아니라는 데 당 안팎의 시각이 모아지고 있다. 출구를 찾기 힘든 ‘정체성’ 논란이 가열되면 될수록 제2, 제3의 승부수를 띄울 여지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운신의 폭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얘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