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해운사에서 뱃일(해상직원)을 하는 B씨. 그는 육상직원(사무직) C씨의 권유로 연간 300만원까지 추가로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어 최근 직장인들 사이에 선풍적 인기를 모으고 있는 개인퇴직계좌(IRP)에 가입하기 위해 은행을 들렀다가 낭패를 봤다. 회사가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하지 않아 IRP 가입 대상이 아니라고 했기 때문이다. B씨가 A해운사에 연유를 묻자 사측은 "퇴직연금 가입 대상자가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B씨는 억울했다. 같은 회사에서 월급을 받으면서 C씨는 세제혜택을 보지만 더 위험한 일을 하는 자신은 세금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B씨는 지난 19일부터 연재한 서울경제신문의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현황' 시리즈를 읽고 기자에게 e메일을 보내 "해상직원 몇 만명이 IRP 통장 가입도, 세제혜택도 받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과연 이 제도가 취약계층을 위한 것인지 개탄스럽다"고 하소연했다.
22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1만4,000여명에 이르는 계약직 해상직원들을 포함해 '퇴직연금 사각지대'에 놓인 근로자들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해운직원들은 선원법(특별법)을 적용 받는데 법상 선원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되지 않아 올해부터 시행된 퇴직연금 절세혜택(퇴직연금 납입액에 대한 세액공제 300만원)을 일절 받지 못하고 있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육상직원들과 해상직원들 중 출항을 준비하기 위해 육상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휴가인 사람들은 퇴직연금 대상자에 포함된다"면서도 "해상직원들 중 뱃일을 하는 일부 선원들은 선원법 적용을 받는다. 선원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돼 있지 않아 퇴직연금에 가입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퇴직금 수령 여부에 관해 정부·선원근로자의 동의를 얻어 퇴직금에 준하는 별도의 제도(퇴직연금제도)를 마련해서 갈음할 수는 있다. 하지만 대체로 운용되고 있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해수부는 이 같은 퇴직연금제도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선원 퇴직연금제도 도입에 관한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있다.
해수부는 올해 안으로 선원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노사 내지 업종(원양어선·원근해어선 등) 간 의견이 달라 조율이 안 되고 있다.
현재 임시직 근로자를 포함해 근속기간 1년 미만 근로자도 일정 기간 이상 근무시 퇴직급여 가입 대상에 포함한다는 내용의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근퇴법) 개정안' 통과 여부도 불투명하다. 고용노동부는 오는 4월까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근퇴법 개정안이 통과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다만 시일 내에 통과가 되더라도 500인 이상 대상 사업자는 내년 1월부터, 500~300인 규모 사업장은 2017년 1월부터, 300~100인 규모 사업장은 2018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업종이 크지 않으면 다른 근로자들에 비해 길게는 3년까지 세액공제혜택을 받지 못하는 셈이다.
D은행 퇴직연금부 팀장은 "은행 입장에서는 56개 금융기관이 경쟁하고 있는 만큼 어떻게든 퇴직연금 사업자나 고객들을 끌어모으고 싶어 한다"면서도 "하지만 1년 미만 신규 입사자들에게는 퇴직연금 지급의무가 법상으로 없어 이들을 유치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따금 돌려보내는 고객들을 생각하면 미안할 따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