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급한 불은 껐지만 '마법탄환'은 못돼"

■ 미국發 제2 모기지 파동 위기감
단기자금 의존등 구조적 측면 간과해 신뢰 못얻어
땜질처방 한계만 드러내 추가 유동성 수혈 불가피
내주부터 주요 은행 실적발표…금융패닉 확산 우려



월스트리트저널은 헨리 폴슨 미 재무부 장관과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구제금융조치가 은행권의 부실과 약세장을 회복시키는 ‘마법탄환(magic bullet)’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전격적인 조치는 미국의 양대 국책 모기지회사인 패니매와 프레디맥의 급한 불을 끄는 역할을 했지만 근원적인 처방이 되지는 못했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조지 W 부시 정부와 FRB가 두 거대 금융기관을 죽일 수 없기 때문에(too big to fail) 시장이 악화될 경우 추가적 조치를 내놓을 것으로 전망했다. 15일 파이낸셜타임스는 미 당국이 패니매ㆍ프레디맥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유동성 ▦자금 ▦구조의 문제에 대한 해법을 동시에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FT는 미 재무부와 FRB의 구제금융이 두 모기지기관이 당면한 유동성 경색을 해소하고 자금조달이 가능하도록 하는 대출규제 완화의 발판을 마련했지만 가장 중요한 구조적인 불균형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패니매와 프레디맥의 구조적인 문제는 두 기관이 그간 단기자금에 심히 의존해왔다는 점이다. 이는 만기가 자주 돌아와 만기연장(roll-over)의 리스크를 높이고 있어 자금난을 심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두 기관의 의무 충당금 비율이 100달러당 0.45달러 비율로 낮게 규정된데다 이들이 보증해온 모기지채권이 5조2,000억달러 상당에 달하는데도 불구하고 기관의 실질 운용자금은 810억달러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패니매와 프레디맥의 자금구조가 허술했다. 이 같은 구조적 측면을 간과한 것이 미 정부의 구제책이 신뢰받기 어려운 원인으로 지적됐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5조달러 채권보유자에 대한 구제금융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채권 투자자들도 최소 2,500억달러의 투자손실을 감수해야 도덕적 해이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애널리스트들은 정부의 구제금융 후에도 패니매와 프레디맥은 최소한 500억~1,000억달러의 추가 유동성 수혈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렇게 되면 미 정부는 공적자금 투입을 단행할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미 세납자들의 부담으로 고스란히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더욱 우려되는 일은 공적자금을 이용해 패니매와 프레디맥이 손실 만회 및 주주배당을 실현하기 위해 대규모의 베팅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미 이 같은 예상을 두고 미 금융권에서는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논란이 일고 있다. 브라이언 베선 글로벌인사이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두 기관의) 자본위기는 미국 경제 사이클상 매우 위험스러운 현상”이라며 “이른바 대마불사의 신화가 대공황 이후 유례없던 모기지 시장의 추가 붕괴 리스크를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들에 대한 투기매도 공세를 진정시키기 위해서도 자본증액의 구체적인 규모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패니매와 프레디맥 이외에도 미국 모기지 시장은 악화일로에 있다. 모기지 전문 저축은행인 인디맥뱅코프가 영업정지 상태에 들어가고 베어스턴스 붕괴 이후 중대형 지방은행들의 줄파산 우려가 높은 상황이다. 뉴욕타임스는 애널리스트들의 분석을 인용해 미국 내 7,500개 금융기관 가운데 150개에 이르는 중소 규모 기관들이 향후 1년~1년반 내에 도산의 운명을 맞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들 모기지기관의 구제금융이 약발을 발휘하지 못한 가운데 미 주요 은행들이 다음주부터 발표하는 2ㆍ4분기 실적에서 줄줄이 추가 상각 및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돼 금융패닉 확산이 불가피해 보인다. 메릴린치와 와코비아는 각각 58억달러, 28억달러를 대손상각 처리할 것으로 예상됐다. FRB는 2001년 경기침체시에 금리인하로 금융시스템을 조정했지만 현재 주택가격 하락과 소비시장 위축 및 고유가 등 경제악재가 팽배한 시점에서 금융당국의 역할은 한계에 부딪혔다는 지적이다. 헤지펀드 매니저 짐 로저스는 “프레디맥과 패니매는 유동성 위기가 아닌 파산위기”라며 “문제는 이들의 과도한 레버리지 투자에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