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는 반도체 광미세가공(리소그래피 시스템) 장비 분야에서 세계 1위 업체인 ASML이 세계 1위 레이저(광원) 생산업체 사이머를 인수한 것에 대해 판매 부문 독립 등을 전제로 조건부로 승인했다고 26일 밝혔다.
ASML은 레이저를 이용해 웨이퍼에 회로를 그리는 장비인 리소그래피 시스템 시장의 83%를 장악한 네덜란드 회사이며 사이머는 리소그래피 시스템에 사용되는 레이저를 생산ㆍ판매하는 미국 기업이다. ASML이 부품납품 회사를 인수한 일종의 수직결합이 이뤄진 것이다.
ASML의 사이머 인수는 국내 반도체 회사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업계의 관심을 받았다. 두 회사가 리소그래피 시스템 전량을 ASML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기업결합 심사건은 전세계 경쟁당국에서도 심사가 진행돼 대만과 일본은 조건부 승인을 내렸고 미국ㆍ이스라엘ㆍ독일은 조건 없이 승인해줬다.
공정위는 두 회사의 결합이 국내 반도체 회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했다. ASML의 경쟁사인 니콘ㆍ캐논 등 일본계 리소그래피 시스템 업체에 레이저 공급을 차단하거나 사이머 경쟁사인 기가포톤으로부터 구매를 중단(봉쇄효과)해 시장 경쟁을 저하시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또 사이머를 통해 경쟁사업자의 사업정보를 입수(협조효과)할 우려도 있다고 봤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양사의 판매 부문 독립 운영 ▲기밀정보 교류방지를 위한 방화벽 설치 ▲광원구매ㆍ판매에서 프랜드(FRAND) 원칙 준수 ▲리소그래피 시스템 판매 시 남용행위 금지 등 4개 조건을 달았다. 앞서 ASML은 지난해 10월 사이머의 주식을 100% 취득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한국 등 6개국에 기업결합을 신고했다.
공정위는 "ASML이 각국 경쟁당국의 승인을 전제로 인수계약을 체결한 만큼 시정조치를 준수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