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가 안내하는 잔혹함의 끝은…"

[리뷰] '악마를 보았다'



눈 내리는 한적한 시골길에 천사의 날개 조명을 룸미러에 장식한 학원 차량 한 대가 서행하고 있다.

마침 차량 고장으로 수리 기사를 기다리고 있는 한 여인에게 미끄러지듯 다가서는 봉고차. 한사코 도움 받기를 거절하며 겁에 질려 하는 여인의 차량 유리창이 도끼질로 부서져 내리기 시작한다. 살인마 장경철(최민식)은 수차례의 도끼질로 간단히 여인을 제압한 후 자신의 살육장으로 데려 간다.

약혼녀의 실종 소식을 접하고 경찰의 수색 현장을 찾은 국정원 경호 요원 수현(이병헌)은 현장에서 발견된 시신의 머리를 접하고 분노에 오열한다.

약혼녀가 받은 고통과 똑같은 고통을 살인마에게 돌려주리라 다짐한 수현은 용의자 장경철을 찾아내 처절한 복수를 시작한다. 수현은 경철의 목숨이 끊어지지 않을 만큼의 폭행을 가한 후 치료까지 해서 여러 차례 풀어주기를 반복한다.

도망칠 때마다 번번이 수현이 자신을 찾아낼 수 있었던 비밀을 파악한 경철은 수현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 폐륜의 범행을 계획하고, 수현 또한 경철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복수를 실행하기 위해 준비한다.

'악마를 보았다'는 근래 개봉한 국내 스릴러 중 잔인함에서 단연 으뜸으로 꼽을 만한 영화다. 경철이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과 수현이 그에 상응하는 복수를 행하는 장면에서 다종다기한 살인 도구들과 폭행 장면이 등장한다. 칼로 발목을 끊어내는가 하면 송곳으로 얼굴을 뚫고, 시신을 토막 내는 장면과 살아 있는 사람의 입을 손으로 찢어 내는 장면 등이 생생하게 그려져 여러 차례 관객들을 소스라치게 만든다.

여기에 살해 대상으로 등장하는 여성들의 강간 장면 또한 지나치게 상세히 묘사됐다. 심지어 강간을 즐기듯 받아들이는 엽기 여성 캐릭터마저 나온다.

현실과 영화의 관계에 집착하는 평자들로부터 무수한 공격을 당할 요소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144분의 러닝 타임 내내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서늘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끝을 모르는 장경철의 악행에 차츰 커져가던 공포와 분노감은 복수를 행할수록 서서히 악에 가까워지는 수현의 감정선에 집중하다 보면 끝내 카타르시스로 거듭나게 된다.

특별한 드라마나 눈을 호사시키는 대규모 액션신은 부재하지만 악(惡)과 악을 닮아가는 선(善)의 대결을 일관된 힘으로 밀어 붙이는 김지운 감독의 뚝심 있는 연출력이 만들어낸 짜임새 있는 기승전결 구조는 영화에 탄력을 더한다.

흐르는 눈물 한 방울에도 고통을 담아 낼 줄 아는 이병헌의 감성 깊은 연기와 소름 끼치도록 생생하게 악마를 그려 낸 최민식의 명품 연기에는 저절로 탄성이 흘러나온다.

단 '하드 고어'의 하자도 참아내기 힘든 관객에게는 관심조차 갖지 말기를 권한다. 영화를 다 본 뒤 관객의 반응은 두 가지로 갈릴 것이다. "해냈다"와 "불쾌하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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