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후반의 이모씨는 지난해 12월 남편이 사망한 후 카드회사와 자산유동화회사 등으로부터 ‘채무 독촉’을 받았다. 사업을 하던 남편이 여기저기서 신용카드 빚과 부실채권 등의 채무를 졌던 것. 어려운 경제형편으로 6,000만원에 달하는 채무를 변제할 능력이 없자 이씨는 미성년인 아들과 함께 상속한정 승인 청구를 하게 됐다.
#원모씨는 올 초 어머니 민모씨가 사망한 뒤 은행으로부터 고지서 한 장을 받았다. 민씨 앞으로 돼 있던 ‘수백만원의 채무 고지서’였다.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았던 원씨는 처음으로 ‘상속포기’를 생각했다. 그러나 상속을 포기하면 2순위 상속자인 자신의 자녀들에게 채무가 이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자녀들과 함께 한정승인 청구를 하게 됐다.
‘빚의 대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정승인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7일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법원에 접수된 한정승인 접수 건수는 1만3,111건으로 지난 2006년(1만1,283건)과 2007년(1만2,885건)보다 1,800여건 이상 증가했다. 상속포기 역시 2007년 1만4,322건에서 2007년 1만3,576건, 2008년 1만3,724건으로 꾸준하게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한정승인과 상속포기는 올해 들어서만 각각 2,445건, 2,377건 접수됐다.
상속포기는 말 그대로 ‘피상속인으로부터의 일체의 재산이나 채무 상속을 포기’하는 것이다. 숨겨진 재산이 발견되더라도 이에 대한 상속권을 주장할 수 없기 때문에 남겨진 재산보다 빚이 더 많을 경우 상속포기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한정승인은 상속 받은 재산의 한도 내에서 채무를 변제하게 된다. 때문에 상속인의 원래 재산으로 책임지는 일은 피할 수 있다. 서로 다른 개념이기는 하지만 결국 한정승인이나 상속포기 모두 ‘남겨진 자들의 빚을 청산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서울가정법원의 한 관계자는 “한정승인 청구는 대부분이 상속 채무의 존재를 몰랐다가 알게 된 경우가 많다”며 “최근의 경기난을 반영하듯 사업실패로 떠안은 빚을 상속 받은 경우도 많고 채무가 100만원대임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가정형편과 숨겨진 채무가 추가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한정승인을 청구하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밝혔다.
한정승인 청구 건수가 상속포기 건수보다 높은 증가율을 보이는 또 다른 이유는 ‘채무 상속의 대물림’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속포기를 할 경우 상속권자가 직계비속, 직계존속, 형제ㆍ자매, 4촌 이내 방계 혈족 순으로 넘어가지만 한정승인은 채무의 상속이 이어지지 않는다. 서울 지역의 한 변호사는 “상속포기만 할 경우 자식에게 빚이 대물림되기 때문에 한정승인을 청구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