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작 엎드려라“ 벙커심리 확산

뉴욕 월가의 요즘 투자 행태를 `벙커 심리(bunker mentality)`라는 말로 요약된다. 포탄이 쏟아지는데 위험스럽게 머리를 내밀지 말고, 안전하게 수그리고 있으라는 말이다. 리스크가 높은 주식시장에서 빠져나와 안전한 미국 국채(TB)와 금으로 이동하고, 그것도 미심쩍으면 차라리 현금(머니마켓펀드)으로 가지고 있으라는 얘기다. 이번주 뉴욕 월가는 오는 17일 시한부 조건의 예고된 전쟁을 앞두고 온통 전쟁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울 것이다. 투자자들은 루머에 귀 기울이고, 정보를 해석하면서 투자 포지션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영국은 17일까지 이라크의 무장해제를 요구하는 새로운 결의안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이때까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대량살상무기를 완전히 해체하고, 그 실체를 공개하지 않을 경우 바로 전쟁에 돌입하겠다는 것이다. 쿠웨이트와 이라크 사이의 국경에 설치된 철조망은 지난주 미 해병대에 의해 제거되기 시작했고, 전쟁에 필요한 거의 모든 병력과 장비가 중동에 배치를 완료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6일 “후세인이 무장해제하지 않으면 우리가 그를 무장해제시킬 것”이라며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유엔 안보리에 거부권을 보유하고 있는 프랑스, 러시아, 중국등이 전쟁 결의안을 반대하고, 안보리 15개국중 4개국만 미국을 지지하고 있을뿐이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은 미국이 유엔의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뉴욕 월가에서 나오는 시나리오는 주가지수가 몇주내에 지난해 9월의 저점 아래로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다우존스 지수는 지난해 9월 저점 7,286 포인트에서 6%의 거리로 좁혀졌다. 지난주 5영업일동안 다우존스 지수는 1.9%, 나스닥 지수는 2.4%, S&P 500 지수 1.4% 각각 하락했다. ◇돌발 상황에 촉각= 뉴욕 맨해튼 남쪽에 짙은 전쟁 먹구름이 다가오고 있지만, 월가의 프로들은 이 틈바구니에서도 먹을 것을 찾아헤메고 있다. 그들은 전쟁이 승리 가능성을 보이는 시점에서 주가가 기술적으로 10~20%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자그마한 뉴스, 루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월가의 꾼들이 노리고 있는 주가 상승의 포인트는 상황을 극적으로 반전시켜줄 요인들이다. 첫째 오사마 빈라덴과 그의 아들, 또는 측근이 체포됐을 경우다. 7일에는 빈 라덴과 그의 두 아들이 체포됐다는 뉴스가 AP 통신과 ABC 방송을 통해 흘러나와 헤지펀드들이 숏커버링의 기회로 삼았다. 백악관은 즉각 부인했다. 하지만 월가에 돌아다니는 소문은 최근 알카에다의 고위층이 나포되면서 그들의 은신처와 움직임이 미 중앙정보국(CIA)의 감시망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둘째, 사담 후세인의 망명설이다. 17일의 짧은 시한을 앞두고 각국이 마지막 중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벼랑끝에서 무언가 해결 가능성을 배제할수 없다. 아랍의 고위층들이 바그다드를 방문, 후세인의 망명을 주선하고 있다는 설이 있다. 현재의 정황으로 보아 그 가능성은 아직 낮고 기대와 루머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지난 7일 ▲부시 대통령의 최후통첩 ▲한스 블릭스 위원장의 이라크 무기사찰 보고 ▲프랑스와 러시아, 중국의 전쟁 반대 ▲미국 고용시장 악화등의 악재속에서도 주가가 올랐다는 것은 계기만 형성되면 주가가 급반등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월가의 꾼들은 정세분석가들을 고용하거나 아랍권 정보망을 풀 가동하며 전환의 시점을 노리고 있다. ◇금리 인하 가능성= 자금이 증시에서 채권시장으로 몰리면서 TB 수익률은 50여년만에 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미국 노동시장도 지난 2월에 2년만에 최악을 기록, 미국인들의 일자리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유가가 급등, 미국 경제가 또다른 침체를 맞을 위험도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금리가 더 내려갈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급부상하고 있다. 메릴린치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이달 18일과 5월에 0.25%씩 두번의 금리인하를 단행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주장이 맞다면 미국의 콜금리는 0.75%로 1% 이하로 떨어지게 된다. JP 모건, 다이와, CIBC등도 동조, 지난주말 현재 모두 4개사가 금리인하론에 가담했다. 11일에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가 열려 전쟁 발발시 산유국의 증산 여부가 논의된다. 이번주에 발표되는 소매판매 동향, 국제수지 동향, 미시건대 소비자심리지수, 도매물가지수등의 경제지표들이 금리 인하의 조건 형성을 관측하는데 관심이 쏠리고 있다. <뉴욕=김인영특파원 in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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