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 우리 경제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 중 하나가 바로 기업 구조조정이다. 산업 생태계를 망가뜨리고 국가
경제를 좀먹는 이른바 좀비 기업을 신속히 솎아내려면 기업 구조조정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특히 경기 침체 장기화로 한계 상황에 직면한 기업이 급증할 것으로 보여 관련 시장도 활기를 띨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이 시장에 조만간 새로운 플레이어가 등장한다. 금융당국이 은행들을 내세워 추진하는 기업구조조정 전문 회사가 주인공이다. 현재 관련 태스크포스(TF)에서 오는 10월 출범을 목표로 첫 구조조정 대상 기업을 추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일단 신규 자금 투입이 됐든 부실채권 매입이 됐든 총 1,000억원 수준에서 지원하면 살아날 가능성이 큰 기업으로 대상이 압축됐다고 한다. 한 마디로 경영 정상화가 어렵지 않은 기업들이다. 시험 문제로 치면 이들 기업의 회생은 그다지 까다롭지 않은 난도의 문제에 비유할 수 있을 듯싶다. 정부는 이런 사례를 통해 구조조정 전문 회사의 연착륙을 꾀하고 시장에서 구조조정 전문 펀드도 활성화한다는 복안이다.
문제는 이런 청사진이 현실에 비춰볼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점에 있다. 경영 정상화에 별 무리가 없는 기업을 골라 '쇼윈도'에 올려놓고 회생을 이뤄낸들 시장에 울림이 클 리 없다. 작은 기업과 달리 대기업 구조조정은 준비된 각본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경쟁력이 없으면 퇴출시킨다"는 단순 명쾌한 시장 논리가 적용되기 어렵다. 작게는 지역 경제, 크게는 국가 경제 차원에서 다뤄지고 그 과정에서 의원 등 유력인사가 압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여신 규모가 서로 다른 채권단의 입장에서는 경영 정상화를 두고 이견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채권단의 신속한 의사결정을 유인할 수 있는 구조조정 전문 회사가 필요하다는 것이 정부 논리지만 은행들이 불안감에 출자를 기피하는 상황에서 얼마나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부가 구조조정 실탄으로 활용한다는 총 1조원의 자본금으로는 흔들리는 중형 조선사 하나도 건사하기 어렵다. 냉정히 말해 구조조정 전문 회사는 "정부도 기업 구조조정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일종의 생색내기에 탁월한 효험이 있어 보일 뿐이다.
이미 구조조정 시장에서는 내공을 갖춘 전문가들이 뛰고 있다. 정부는 기업 구조조정 전문 펀드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하지만 지난해 국내 사모펀드(PEF) 시장 규모는 51조원(약정액 기준)이 넘는다.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 전문 회사가 괜스레 금융권에 이런저런 불필요한 비용과 비효율만 낳지 않을까 염려된다. 사실 한계 기업의 신속한 구조조정과 관련해 정부가 할 일은 따로 있다. 산업은행 등 국책 금융기관을 제대로 관리하고 노동개혁 등을 통해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는 일이다. 채권단 이견 조정도 기존의 감독 기능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당국의 답답한 마음은 십분 이해하지만 구조조정 전문 회사를 통해 지나친 욕심을 내는 순간 부작용이 더 커질 수 있다. 시장은 가급적이면 시장에 맡기는 것이 순리다.
이상훈 경제부 차장 shlee@sed.co.kr